눈길 닿는 곳마다 ‘산수화’펼쳐지고

바닷가 산들은 다 그렇다. 숫자로 나타나는 야트막한 높이보다는 적어도 200m가 더 있다고 봐야 한다.
좌이산도 마찬가지다. 산마루에 오르면 높이가 392m라고 표지석에 적혀 있지만 산자락이 바다와 맞닿아 있기에 내륙에 있는 산과는 달리 꼬박 걸어서 올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등산길은 바닷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바닷가를 달리던 1010호 지방도가 산 사이로 접어드는 지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등산은 새로 지은 절집인 청룡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청룡사는 산자락을 깔고 앉아 있다. 자동차를 세우고 막 내리려니까 살림을 맡아 하는 듯한 보살 한 분이 나와 인사를 한다. “산에 가는 길이요. 나중에 내려오는 길에 들러 밥이라도 먹고 가시우.”
길손에게 이런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게 참 반갑다. 아무리 빈말이라도 이런 말을 툭 던져낼 수 있는 보살의 마음씨가 고마운 것이다. 밥 한 그릇보다는 말에 담겨 있는 수굿한 인정이 그리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절 오른편으로는 길이 휑하니 뚫려 있다. 등산길답지 않을 정도로 너른 데다가 띄엄띄엄 가로등까지 서 있다. 길가에는 ‘천수천안 관음보살’ 운운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아마 이 길이 보살상 앞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가파르기는 만만치 않다. 낮은 산이라고 얕보았다가는 오르는 길에 주저앉을 수도 있겠다 싶다. 오르는 가운데 쉬어 갈만한 길목도 없어서, 마음을 미리 다잡고 오르지 않으면 무척 힘든 길이 될 수도 있겠다.
20분쯤 씩씩대고 오르니 반듯한 길에서 왼편 속으로 조그맣게 난 길이 보인다. 산꼭대기로 오르려면 관음보살이 맞이할 큰길을 버리고 이 좁은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기울기가 훨씬 덜해져 발걸음도 가벼운데, 잡목이 우거져 있는 길이라 한결 호젓한 느낌이 든다.
곧바로 만나게 되는 산등성에서 산마루까지는 더욱 짧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섬과 양식어장이 짜깁기하듯 펼쳐진 바다가 있어 느낌이 상쾌하다.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로 땅을 골라 밟으며 정상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통영 사량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편으로는 고성 앞바다가 펼쳐진다. 점점이 흩어진 섬들 사이로 기구를 매달아 뚜렷하게 표시가 나는 양식어장들이 사이사이 자리잡고 있어, 커다란 섬 하나가 가까이 떠 있는 사량도쪽보다는 아기자기한 맛이 더 나는 풍경인 것이다.
좌이산은 이처럼 오르는 데 30분이면 충분한 산이면서도 조금은 맛이 다른 풍경들을 여럿 보여준다. 오른쪽에는 통영 앞바다, 왼쪽에는 고성 앞바다가 떠 있다. 뒤쪽으로는 졸망졸망한 봉우리들이 끊임없이 북쪽으로 달리고 있다. 가운데에는 또 사람들이 엎드려 농사를 짓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산꼭대기 바로 아래에는 봉수대가 있다. 마산 진동면 광암 들머리의 봉수대처럼 제대로 갖춘 모양은 아닌 듯하고 오히려 조그만 망루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쨌거나 이 봉수대는 거제 가라산에서 시작되는 조선시대 주된 봉수로 가운데 하나로 통영을 거쳐 횃불 신호를 사천 각산으로 이어주는 구실을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려가다가 기도하러 올라오는 보살들을 만났다. 산꼭대기 올라갔다 오는 길이라고 말해주니까 “관음보살 계시는 자리가 전망이 더 좋아요” 기어이 한 마디 거든다. 다음에 올 때는 그쪽도 한 번 들러 봐야 하나 어쩌나.

△가볼만한 곳-‘한국판 쥐라기 공원’상족암

고성 하일면 좌이산에서 조금만 더 삼천포항쪽으로 나가면 하이면 덕명리에 공룡발자국 화석으로 이름난 상족암이 있다.
이렇게 한 군데 집중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는데, 얼핏 보기에는 바닷가 바위에 살짝 팬 구덩이 같은데 사실은 하나하나가 공룡 발자국 화석이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썰물 때에 맞춰 찾아가지 못해 공룡 발자국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대 야트막한 바위들에 새겨진 발자국들을 머리에 떠올릴 수만 있다면 수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절 호숫가 갯벌을 거닐며 먹이를 찾는 공룡을 상상하기는 그리 힘들지 않다. 물론 아이들은 바닷물에 잠긴 공룡발자국화석이 못내 아쉬운 듯, “발자국이 왜 이것밖에 없어.” 하고 따라 다니는 부모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것은 아니다. 건너편에 마주보이는 단애는 말 그대로 깎아지른 듯 서 있는데 세로로 난 결이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단애 뒤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 상족암쪽을 바라보는 재미도 그윽하다.
제철이 아닐 때 상족암을 찾으면 주차요금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또 자동차를 자기가 바라는 대로 깊숙하게 안쪽까지 당겨 댈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아이와 함께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만약 주머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해안 따라 붙어 있는 횟집에 들를 수도 있겠다. 식구들끼리 회 한 접시에다 소주 한 잔 곁들인 다음 매운탕에다 공기밥 한 그릇 비벼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이런 자리를 통해 새해에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의논해 보는 것도 괜찮겠고.

△찾아가는 길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좌이산 가는 길은 아주 멋진 바닷가 드라이브 코스가 된다. 고성읍에서 군청을 끼고 1010번 지방도를 따라 달리는 것이다. 창원.마산에서는 국도 14호선을 타고 가다 고성경찰서에서 우회전해 올라가면 군청이 나오고, 진주.사천쪽에서는 국도 33호선이 고성읍으로 이어진다.
군청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삼산면으로 도로가 이어진다. 짧은 일방통행구간을 지나 왕복 2차로 도로가 나타나더라도 갈길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빨리 몰면 잇달아 펼쳐지는 겨울 바다 풍경을 눈에 많이 담을 수 없겠기 때문이다.
고성읍에서 좌이산까지는 30km 거리. 자동차를 몰고 30분이면 족하다. 가다보면 나오는 중촌삼거리를 지나쳐 삼산면을 벗어나면 하일면이 맞이한다. 하일면 들머리에는 최씨 집성촌이고 옛집들과 돌담장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학림 마을이 있다.
여기서 하일중학교를 지나쳐 계속 내달리면 얼마 안가 길 오른쪽으로 주유소가 하나 나타나고 이어서 ‘한려쉼터’라는 간판을 매단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쯤에서 자동차 속도를 늦춰 천천히 몰다 보면 100m도 안가 길 왼쪽으로 ‘청룡사’를 알리는 표지판이 조그맣게 세워져 있다. 여기서 길을 바꿔 산으로 올라야 한다. 주차는 청룡사 주차장을 빌려 하면 되는데 전혀 까탈을 잡지 않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만약 ‘제전삼거리’나 ‘월흥사거리’를 알리는 도로표지판이 나오면 등산길로 접어드는 길머리를 지나쳐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곧바로 차를 돌려도 되고 아니면 이왕 내친 김에 계속 달려 하이면 덕명리 입암 마을에 있는, 공룡 발자국으로 이름난 상족암을 먼저 들러 보고 돌아나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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