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결혼했어요]허지훈 황리혜 부부

허지훈(31)·황리혜(27) 부부. 남자는 한국, 여자는 대만 사람이다.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둘은 쉽지 않은 사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단단한 사랑을 할 수 있었다.

2006년 4월 3일. 지훈 씨는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리혜 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 넉살 좋은 지훈 씨는 영어·일본어를 섞어 가며 말을 건넸다. 반응이 아주 시큰둥했다.

"나중에 아내로부터 전해 들었죠. 그날 제가 가고 나서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는군요. '저런 놈들은 조심해야 한다. 남자를 만나도 저렇게 가벼운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말이죠."

그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흘렀다. 지훈 씨는 그녀가 같은 어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다. 놀라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대만 사람이었다.

창원 장미공원에서 올린 결혼식 모습.

그녀도 공항에서와는 달리 붙임성 좋은 지훈 씨를 편하게 받아들였다. 둘은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아내를 포함해 자주 모이는 멤버들이 맥주 한잔 하기로 했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일이 생겨 모두 못 나오게 된 거예요. 둘만 만나기로 했죠. 약속 장소 저 멀리서 보니 웬 남자와 함께 있는 거예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알고 보니 '술 한잔 같이하자'며 수작 거는 남자였어요.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몸싸움까지 가게 됐죠. 그러다 틈을 봐서 아내와 함께 도망을 쳤죠. 한참을 뛰다 좀 여유를 찾고 보니, 아내 손을 꼭 쥐고 있는 거예요. 놓기 싫더라고요. 그날 그렇게 고백하게 됐죠."

그때부터 둘은 1년간 달콤한 연애를 이어갔다. 하지만 예고된 험로가 찾아왔다. 둘은 계획된 유학생활을 마치고 각자 나라로 돌아갔다. 장거리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대만에서 올린 결혼식 모습

대학에 복학한 지훈 씨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조금씩 모았다. 그 자금으로 1년에 두어 번 리혜 씨를 만나러 대만에 갔다.

본격적인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양쪽 집안에서도 둘 관계를 알았다. 지훈 씨 집안에서는 열렬히 지지해 주었다. 리혜 씨가 한국에 오기라도 하면 집에 현수막을 내걸며 환영해 주었다. 문제는 리혜 씨 쪽이었다.

"아무래도 국적이 다르다 보니 아내 집안에서는 반대가 심했습니다. 특히 한국·대만 간 국교 단절 문제도 있고 하니, 정서적으로 더 그랬죠. 제가 대만에 찾아가면 문전박대하셨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래서 더 간절하고, 또 오기도 생겼어요."

리혜 씨 집안 반대는 워낙 완강했다. 그래서 둘은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몰래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서 절차는 끝내고, 대만에서 진행해 갔죠. 그쪽에서는 법원에 신고를 해야 하더라고요. 그런데 법원에서 아내 집에 전화하는 바람에 들통 난 거예요. 아내 집에서 난리가 나서 없던 일로 됐죠."

그래도 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리혜 씨 집안에서도 변화 기류가 흘렀다. 시간이 흐른다고 제풀에 꺾일 둘이 아니란 걸 알았던 것이다. 지훈 씨가 나섰다.

"이제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했죠. 아내가 한국에 적응하는 문제만 남은 거죠. 그래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적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장인어른 동의 아래 저희 집에서 어른들과 함께 지내면서 말이죠."

야구장에서 지훈 씨가 프러포즈하는 장면.

리혜 씨는 창신대학교 관광일본어과에 다니며 한국 생활에 점차 녹아 갔다. 결국 지난해 11월, 양가 상견례를 거치며 결혼까지 약속했다. 올여름에 먼저 대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대만 결혼 문화는 축제와 같아요. 결혼식을 3~4시간가량 느긋하게 하며 음식도 함께 먹고, 강남스타일·노바디 같은 한국 노래도 부르며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달 후에는 리혜 씨 가족이 한국에 총출동했다. 열혈 야구팬인 지훈 씨는 NC다이노스 홈경기 때 리예 씨 가족, 그리고 관중 앞에서 프러포즈 이벤트를 했다.

둘은 지금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보금자리를 두고 있다. 리혜 씨가 국적을 옮길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게 없다. 지훈 씨는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말한다.

리혜 씨는 이제 한국문화에 완전히 젖어들었다. 지훈 씨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말을 너무 잘해서 걱정이에요. 어휴, 비속어도 입에서 술술 나와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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