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56) 하경봉 산청 신선주식회사 대표

처음부터 막걸리에 인생을 걸 생각은 없었다. 농촌테마관광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막걸리'로 이끌었다.

산청군 생초면에서 농업회사법인 신선주식회사를 운영하는 하경봉(47) 대표.

아무런 기초 없이 무작정 시작한 막걸리 인생이지만, 이제는 그의 눈에 '막걸리'만 들어온다. 그렇다고 꿈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다. '막걸리를 이용한 농촌테마관광사업'은 언젠가 그가 만들 '미래'이다.

◇6개월 한시직이 결국 법인 대표로 = 마산과 진주 등지에서 출판·광고업을 하던 하 대표는 2007년 경남과학기술대학에 있는 창업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게 된다. 업종 전환을 고려하다 농촌관광테마사업에 관심을 뒀다.

그런데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막걸리가 한창 뜰 때, 일본 수출을 염두에 두고 한방 막걸리를 만들려고 법인을 만든 사람들이 마케팅·창업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공장이 있는 것도,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6개월 정도만 업무를 도우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게 2010년이었죠. 그런데 2개월쯤 지나서 법인 대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게 됐습니다. 결국 남은 네분과 협의해서 제가 업무를 인수해 대표가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막걸리를 마시기만 했지, 특별한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막걸리가 그의 인생이 됐다.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2010년 9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자료를 찾고 주변의 술도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막걸리는 만드는 표준이 없었습니다. 표준화된 이론이나 방식 없이 지역마다, 집집마다 맛이 다 달랐죠."

제조 방식에 표준이 없다 보니 맛에 대한 표준도 없었다. 그 지역에서 인기 있는 막걸리가 바로 그 지역의 표준이 됐다. 즉 다른 막걸리의 진입 장벽이 의외로 높았다.

하경봉 대표가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뽑아 마실 수 있는 기계 '쿨 슬러시'를 설명하고 있다.

법인 대표를 맡은 하 대표는 2011년 공장을 짓고 생산 시스템을 갖췄다. 그리고 발효균을 공부한 박사를 공장장으로 초빙했다.

"막걸리 도가에서 일하던 사람을 공장장으로 둘 수도 있었지만, 발효균을 이론적으로 공부한 사람을 채용했습니다.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같이 막걸리 레시피를 완성해 표준화·규격화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보편적인 맛을 찾아서 = 3개월이 걸려 2012년 설 무렵 첫술이 탄생했다.

"'아, 이게 바로 우리가 생각했던 막걸리다' 하는 제품을 만들어 상표 등록해 시장에 내놨습니다. 그런데 각 지역에는 그 지역 막걸리가 맛의 기준이 돼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 맛에 길들어 있으니 가는 곳마다 우리 것은 '이상한 막걸리'가 되더군요."

소비자들의 외면. 그때부터 '보편적인 맛'을 찾아 나섰다.

이곳 막걸리를 마셔본 사람들은 '너무 부드럽다' '깊은맛이 없다' '쓴맛이 많이 난다' 등의 지적을 했다.

하 대표는 이를 "100% 쌀 막걸리의 특징 때문"이라고 했다.

'지리산신선막걸리'는 우리 쌀 100%로 만든다. 그리고 인공 감미료 대신 천연 감미료를 쓴다. 생산비가 비싸고 맛이 잘 살지 않지만, 인공 감미료를 쓸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다. 강제로 탄산을 주입하는 것도 하 대표는 반대한다.

쌀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맛을 찾는 작업이 계속됐다.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면서 농촌진흥청 등의 전문가와 술도가의 조언을 구했다.

각종 자료와 서적을 다시 점검하고 여러 맛 평가회에서 나온 지적을 메모해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매출 부진으로 지난해 말 공장장 등 직원을 대부분 내보내고 현재 전체 직원은 하 대표를 포함해 3명뿐이다. 막걸리는 하 대표가 직접 만들고 있다.

하 대표가 발효 중인 막걸리를 섞고 있다.

◇특수 막걸리 포기 = 처음 법인을 만든 주주들이 계획한 것은 한방 막걸리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중성에서 기능성 막걸리는 일반 막걸리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특히 마트 등에서 판매할 때 힘듭니다. 기존 복분자나 당귀 등을 넣은 막걸리가 있지만 대부분 마트의 대중 판매에서 실패했습니다."

결국 신선주식회사가 계획한 것은 '지리산 신선 막걸리'와 '웰빙 여성 막걸리 신선 동동', 그리고 '음악 막걸리 락주'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리산 신선 막걸리' 1종만 생산한다.

"한방 막걸리를 포기한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잖아도 좁은 마트를 뚫을 때 제품을 2~3가지 가지고 가는 것보다 1가지만 가지고 가는 게 훨씬 낫습니다. 또 락주는 가격 부담도 있어서 포기했습니다."

여성 막걸리 신선 동동은 유산균을 배가시켜 만든 것이다.

'음악 막걸리 락주'는 술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음악을 들려주며 만드는 술인데 마개를 따면 음악이 나오는 특수 용기에 넣어 판매할 계획이었다. 락주는 방사능 오염으로 시끄러운 일본 시장을 노리고 체내 불순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이 있다고 알려진 키토산을 넣어 만들었다. 하지만 음악(산청 아리랑) 저작권 문제 등 여러 가지로 힘이 들었다. 마트 진입 장벽도 너무 높았다.

"보통 막걸리는 한 병에 1000원 안팎의 저렴한 술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특수용기를 쓰면 3000원 이상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비싼 막걸리를 소비자들이 선뜻 사먹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막걸리에 전력하자는 방향을 잡고 '지리산 신선막걸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신선 막걸리.

◇막걸리 무한 리필 주점 '신선 막걸리' = 마트 진입이 힘들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하 대표는 진주·산청 등의 농협 하나로마트부터 홍보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부터 마트에 찾아가서 맨투맨 식으로 홍보,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지역뿐 아니라 합천, 마산, 김천, 하동에도 일부 마트·식당에 납품됩니다."

하 대표는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 등을 통해 항상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올 4월에는 진주시 신안동에 '신선 막걸리'라는 주점을 열었다.

"일종의 홍보관처럼 직영 주점을 개점했습니다. 안주만 시키면 막걸리는 완전 무한 리필로 영업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술을 시키면 안주가 계속 나오는 실비집과는 반대 개념이다. 하 대표는 주점 '신선 막걸리' 2호점 계획을 하고 있으며, 여건이 되면 프랜차이즈까지 진출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 대표가 도입한 '막걸리 쿨 슬러시'는 프랜차이즈 주점이나 행사장 용으로 주문 제작한 것이다. 막걸리를 주전자 등에 넣어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마치 생맥주처럼 기계에서 뽑아 낸다.

"처음에는 정수기처럼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빼내도 차갑지가 않더군요. 또 막걸리는 침전되니까 정수기형 기계는 맞지 않았습니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좋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결국 전자적인 기능에 의해 침전을 안 시키고 일정량(30ℓ)을 계속 시원하게 뽑아 마실 수 있는 지금의 생맥주형 쿨 슬러시를 도입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뽑아 마신다는 신선한 아이디어의 이 기계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하 대표는 현재 '막걸리 세러피 찜질 펜션' 건설을 계획했다가 자금 사정 등으로 보류한 상태다.

"막걸리에 농촌테마관광을 접목한 사업인데, 추진이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보류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막걸리와 농촌을 함께 알리는 사업을 선보일 겁니다."

지리산 신선 막걸리는 0.75ℓ짜리 1상자(20병) 2만 원에 택배 주문할 수 있다. 문의 055-973-5424.

<추천이유>

◇이영미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가 = 하경봉 대표는 우리 쌀을 100% 활용하여 신선막걸리, 웰빙여성막걸리 신선동동, 한방, 쇠비름, 파프리카막걸리와 더불어 한방, 식초, 바게트, 푸딩, 떡 등 다양한 품목으로 농업소득을 올리는 가공산업의 선두주자입니다. 현재까지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 만든 차별화된 제품을 2013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장에 선을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세련된 포장과 맛으로 고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서 농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집념의 사나이이자 강한 청년CE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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