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김숙영 의령군 정곡면사무소 총무담당

세상이 글로벌화 되면서 모든 것이 급변하는 가운데 국제화의 최일선에 있는 다국적 기업은 물론, 중앙부처나 공공기관에서도 글로벌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외국어 한두 개쯤 구사하는 것은 필수로 여겨지며 이제는 신기한 일도 아니다. 요즘은 광역자치단체가 아닌 기초단체 공무원 중에서도 외국어, 그중에서도 영어 하나만큼은 잘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중국어, 그것도 작은 면사무소 계장급 공무원이 능숙한 중국어를 바탕으로 관광정책에 관여하며 중국통으로 활약하고 있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주인공은 의령군 정곡면사무소 총무담당 김숙영(여·44·사진) 주무관. 김 주무관은 의령 출신으로 1990년 9급 행정직으로 공직에 입문해 현재 23년차인 중국통 공무원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거나 중국계 회사에 다녔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순전히 시대적 요청에 의해서, 그리고 우연하게 중국어를 시작하게 됐고, 거의 독학으로 실력을 쌓았다.

공직에 첫발을 디딘 이래 의령군 궁류면과 칠곡면, 의령군청 지적과, 그리고 의령읍사무소에서 직접 현장의 주민과 부딪히며 말단 행정을 경험했지만, 중국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방화 시대에 스스로 차별화된 공직자로서 변화를 꿈꾸었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맞춤형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던 중 1995년, 김 주무관을 변화시킬 기회가 찾아왔다.

   

경상남도 인재개발원 교육 프로그램에 단기 중국어 회화 기초과정이 개설됐고, 이 교육을 수료하면서 좀 더 발전적으로 중국어 전문가가 되어 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처음 대하는 외국어가 왠지 낯설고 어려운 건 여느 사람처럼 김 주무관도 마찬가지. 공부를 그만둘까 여러번 망설였지만,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찾아왔다. 군청 건설과에 재직하던 2003년 의령군과 국제자매 도시인 중국 산동성 요성시 공무원이 의령군에 교환근무를 오게 되고, 중국 공무원과의 교류를 통해 그동안 몇 마디 배운 어설픈 중국어에 대한 언어장벽을 새삼 겪으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대학이든 교육기관이든 중국어 소통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책 보따리를 들고 다녔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지 2004년 의령군청 공무원으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국 산동성 요성시 인민정부에 6개월간 공무원 교환 근무를 가게 됐다.

그는 여전히 현지에서 겪어야 하는 언어장벽에 밤잠을 설치며 공부했고, 너무 힘들어 파견근무를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현지 중국인을 붙들고 무슨 말이든 대화를 시도하고 모르면 책장을 뒤져 단어와 문장을 익혔다는 후문이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파견 직후 그렇게 잘 들리지 않던 중국어가 어느 날 표준어와 대비돼 요성시 사투리까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견 4개월여 비로소 요성시 인민정부 인사와 자연스러운 소통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김 주무관은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하며 웃는다.

"처음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그냥 겸연쩍게 웃기만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대화를 시도하니 중국 요성시 정부인사가 저를 마치 회화의 천재인 양 여겼습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산동성 요성시 지방 TV 방송국이 '한국 공무원의 중국에서의 하루'라는 다큐를 만들어 방영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중국 요성시에서 일약 스타가 되는 행운까지 누렸다"며 미소 짓는다.

귀국 후 그녀의 노력으로 중국 요성시 인민정부와의 교류는 더욱 활기를 띠어 양국 지방정부 청소년 홈스테이, 요성과 의령 남산초등학교 탁구 교류, 그리고 양 지방정부 기념행사 초청이 정례화됐고, 지금도 의령군에선 중국이라는 나라의 두 음절만 나타나면 그녀가 늘 자리를 함께하는 계기가 됐다.

김 주무관의 중국에 대한 가교 역할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힘주어 말한다.

"중국과의 교류는 단순한 친선교류에만 그치면 안 됩니다. 지방정부의 국제화를 달성하기 위해 양국 지방정부가 상생 발전해야 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합니다."

그녀는 "2013년 3월 중국 상해 푸동 공항과 의령 인근 사천공항에 중국 전세기가 취항하게 됐다"며 "중국인 관광코스로 정암 솥바위-호암 이병철 생가-역사문화 부잣길을 잇는 관광지 개발을 타진했다"고 말했다.

물론 김 주무관의 이런 노력과 시도는 그녀가 중국 요성시 파견 근무 당시 유별나게 우리나라 삼성 제품인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MP4 등을 선호하는 중국인이 다수라는 현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변화 속에서 시골 정곡면의 계장직을 맡고 있으면서 세계를 주시하고 있는 중국통인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에서 우리 공직 사회의 새로운 희망을 엿보게 한다.

그녀는 오늘도 TV를 보거나 잡지를 넘기다가 모르는 중국어가 발견되면 즉시 스마트폰을 검색해 그 단어를 암기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며 학구열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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