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주야,

오늘만큼은 손 글씨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데, 막상 너 밖에 떠오르는 이가 없구나. 이사는 며칠 전에 했는데 날씨가 무더워 짐 정리를 미루어 두었다가 이제야 정리를 시작했다.

짐 정리를 하다 보니 아주 오래 전부터 보관해왔던 편지함이 눈에 띄더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라는 사람이 꼼꼼하게 정리하고 챙겨두는 성격이 못 되지 않니.

아마 이 편지들도 작정하고 모았다기보다는 버리지 못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추억하고픈 기억들을 아까워하며 꼬박꼬박 간직한 것들은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빛바랜 상자 안에는 제대로 된 편지지도 아닌 노트에 끄적거려 놓은 메모지까지 몇 다발이나 섞여 있으니 이사할 때마다 짐꾼들이 가져갈 짐이냐고 되묻는 데도 이젠 익숙해졌어.

손 글씨의 흔적을 쓰레기처럼 버리기 뭣해서 가지고 다니게 된 것이 벌써 이십여 년이 지났으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대로 정리해서 처분할 작정으로 열어보았다가 무심히 몇 장 잡아서 읽게 된 편지들이 너에게 손 편지를 쓰게 된 이유란다.

거기엔 수업 시간 중에 노트 귀퉁이를 찢어서 선생님이나 친구 흉을 보기도 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해 서로 위로를 주고 받던 서툰 사춘기 여고생이 있었고 난생처음 엠티라는 것을 가서 누군가를 짝사랑하게 된 새내기 대학생이 있더구나.

나의 편지가 유일한 낙이라며 우정을 빙자하여 동정심을 유발하던 군대 간 동기들과 나보다는 내 친구에게 더 관심이 많았던 흑심으로 가득 찬 선배들도 나를 유쾌하게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 모든 이야기가 나에게 향해 있었고, 내가 주인공인 드라마였음에도 나는 어쩌면 그리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름이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나에게 여전히 변치 않을 우정과 사랑을 약속하며 내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을 왜 여태 몰랐을까?

한참을 음미하던 편지들을 세월의 모양대로 다시 접어 넣으며 이제는 더 이상 낡은 편지 상자를 버릴까 말까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십여 년을 나의 무관심 속에서도 용케 버텨 준 낡은 종이 상자의 노고에 감사를 전하며, 좀 더 견고한 상자를 구해볼 생각이다.

너와도 참 많은 이야기를 글로 나누었는데 내용이야 잘 기억나지 않지만 너의 글들이 다정하고 유쾌했던 것만은 떠오른다. 다른 대화들 덕분에 지금은 전화기에서 지워지고 없는 우리의 대화들이 어지간히 아쉬웠는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라져 버리는 이야기가 오늘따라 더 아깝고 야속하네.

   

아쉬운 마음을 너의 아날로그식 답장을 기대하며 달래본다. 다시 이십여 년 후에도 지금의 너를 이렇게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초가을 늦은 밤 너의 벗이.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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