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있는 수재가 밝힌 공부 잘하는 비법

우스갯소리를 곁들여 사람을 나누는 방법이 있다. 고등학교·대학교 학과 선택의 한 기준이 되는 ‘문과 체질’과 ‘이과 체질’이 그것이다. 전자가 감성적이며 문학과 언어에 강한 사람을 말한다면 후자는 논리적이고 계산이 빠르며 수(數)·공식과 친밀한 사람을 나타낸다. 교과서 과목 국어·사회와 수학·과학이 지닌 특성을 포함한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사람을 구분·단정 짓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들어맞는 부분도 있어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난 9일 만난 박형돈(한국학원) 원장은 이 기준에 꽤 잘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쌓인 지식은 두 분야를 모두 꿰뚫고 있었지만 성격만큼은 뚜렷했다. 지금껏 걸어온 길도 품은 신념도 그와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는 논리적이었고 매사에 철저했다. 그리고 인터뷰가 끝날 무렵 결국 그가 먼저 한 마디 툭 던졌다.

“소설이나 수필을 잘 못 읽어요. 즐기지 않고 전투적으로 읽죠. 계속 지식을 얻으려 하거든요. 완전 이과 체질이죠.”

박형돈 한국학원 원장./박일호 기자

프로 세계에 발을 내딛다

박형돈 원장 약력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학력이다. 1989년 그는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게다가 1994년에는 서울대 석사 학위까지 달았다. 익히 말하는 수재이다. 하지만 태생적인 천재는 아니었다. 오로지 노력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허약했죠. 겨울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으니까요.”

대신 그는 공부를 집요하게 했다. 아는 게 부족한 만큼 공부에 매진했다. 계획적인 생활과 끈기로 공부 습관을 만들어나갔다. 그와 같은 노력은 고등학교 때 빛을 발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창원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입학, 대학원 졸업까지 무사히 마쳤다. 이윽고 1995년 그는 ‘삼성중공업 창원 제1공장’에 입사했다. 이른바 선망 직장에 취업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조금 생각은 달랐다.

“일에 흥미를 붙일 수 없었어요. 온종일 컴퓨터만 바라봐야 했거든요. 아침 7시에 출근해 10~11시까지 일만 하는 삶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고민했죠. 진급 스트레스며 인사관리 시스템도 문제였고요. 난해한 수학·물리 문제를 고민 끝에 해결했을 때 얻었던 성취감 같은 게 전혀 없었어요. 단순 업무만 반복했죠.”

결국 그는 11개월 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후회는 없었다. 그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고자 했던 소박한 바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우선 학원 강사를 해보기로 했다. 물론 애초에 평생 직장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서울에서 과외를 해 본 경험도 있었고 무엇보다 학원에 가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선 결과였다. 그 길로 마산학원에 강사로 취업했다.

하지만 막상 마주친 현실은 달랐다. 자신했던 ‘과외 경험’은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곳에는 그와 전혀 다른 ‘프로들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었다. 그는 다시 뚝심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이 직업을 평생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박형돈 한국학원 원장./박일호 기자

프로 강사를 넘어 원장이 되기까지

“좋은 강의에 빠져드는 학생들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하나라도 더 이해하고자 집중하는 느낌…. 일종의 마약 같다고 할까요? 강의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가 즐겁죠.”

인식이 바뀌자 아마추어라고 느꼈던 실력도 날로 늘어만 갔다. 박형돈 원장은 어느새 프로 강사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더니 학원 이사자리도 제의받았다. 이윽고 ‘강사와 이사’라는 두 직책에 올랐고, 개인 브랜드도 점차 커져갔다. 그는 재수생 1000여 명을 데리고 강의를 해 보기도 했고, 인기 수업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렇다고 쉽게 만족하지 않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다.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9년이란 세월이 지나 있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것도 그쯤이었다.

“오랜 기간 한 학원에 몸담고 있다 보니 생각의 차이도 보이더라고요.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달랐고 품은 의지도 제각각이었죠. 1년 넘게 대화해 오며 타협점을 찾아보려고도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어요. 제 생각으론 더 참신하고 진취적인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그동안 사교육 환경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더는 나태하게 대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또 한 번 제 발로 직장을 나왔다. 이어 모아둔 돈에 대출금을 더해 ‘단과 전문학원’을 차렸다. 프로 강사 세계에 뛰어든 지 근 10년 만에 원장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 후 1년 가까이 운영해 오던 학원은 다른 학원과 동업하며 더 키워나갔다. ‘한국학원’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6년 전에 다시 한 번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홀로 마산의료원 후문 쪽에 위치해 있던 학원에서 나와 현 위치(마산합포구 중앙동2가)에 새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어느새 ‘한국학원’은 창원 지역을 대표하는 ‘입시·종합학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박형돈 한국학원 원장./박일호 기자

여전히 빛나는 뚝심

많은 사람이 학원을 떠올릴 때 품는 오해가 하나 있다. 박형돈 원장 역시 그 점을 명확히 짚어줬다.

“학원 강사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잘못 알려진 이야기에요. 큰돈을 버는 건 정말 극소수죠. 그마저도 6차 교육 과정 때는 그나마 나았어요. 7차에 들어오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문과, 이과 구분이 더 명확해 지고 수능 과목 역시 ‘선택형’으로 바뀌었어요. 쉽게 말해 10개 과목이 3~4개로 줄어든 거죠. 당연히 학원 강의 수는 물론 강사도 줄어들 수밖에 없죠. 앞으로 학원 운영은 더 힘들 거라고 봐요. 인터넷 강의가 보편화 되고, 그에 맞춘 첨단 기기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까요.”

여태껏 여러 번 변화를 겪어왔고, 그에 맞춰 탁월한 선택을 해 온 그였다. 이곳에 정착한 이후에는 필요에 따라 강의 수는 물론 학원 평수를 줄이기까지 했다. 재수생 반은 다른 학원과 연계하는 형태로 수업 방식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앞으로 다가올 변화 역시 지혜롭게 헤쳐나갈 테지만 일단 그는 좀 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대신 ‘시대에 맞춰 가야한다’는 말을 강조하며 그 속에 품은 신념도 내비쳤다.

“흔히 학부모님들이 자식이 다닐 학원을 정할 때 학생 수를 중요하게 여기곤 하죠. 하지만 강의 선택 기준이 학생 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보다 고등부 수업을 꾸준히 해오거나 대입재수·종합반 경력이 있는 강사를 우선으로 여겨야 하죠. 더불어 1:1, 3:1 맞춤강의가 성행하는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듣는 학생이야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강사 자질이 의심될 수 있기 때문이죠. 내 아이만 가르침 받는 특별한 수업은 지양하고 10~20명 내외 학생들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강사에게 배우도록 해야 해요. 수업의 질이 다르죠.”

이 같은 신념은 그가 진행하는 진로 상담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많은 경험을 해라’, ‘진취적으로 살아라’와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보다는 ‘더 길게 보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라’와 같은 현실적 조언을 자주 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생명공학과’ 진학을 꿈꾸는 대부분 이과 여학생에게 산업기반이 취약하다는 약점을 일깨워주며 ‘화학공학과’나 ‘기계과’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이 지닌 고용창출 효과, 에너지 저장 기술의 장래성,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폐기 처분하는 기술 등 미래를 내다보고 비교적 발전가능성이 큰 분야·직업군을 콕콕 집어낸 결과다. 평소 경제 뉴스를 즐겨보고, 사회 과학책과 경제지를 좋아하며 확실한 근거를 찾아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일이 습관화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완벽한 ‘이과 체질’이기에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는 것들이다.

박형돈 한국학원 원장./박일호 기자

이 외에도 그는 에너지, 교육정책 등에도 폭넓게 관심을 두고 있다. 이에 ‘입시제도를 간소화해야 한다’, ‘평준화 교육도 좋지만 수준별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다’와 같은 주장을 언제든 논리적으로 펼칠 준비가 돼 있다. 관심 있는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 ‘뚝심’이 여전히 빛나는 셈이다.

공부 잘하는 비법

박형돈 원장 곁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공부 잘 비법이 뭘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뚝심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 박식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똑 부러지는 공부 비법을 밝혔다.
“수학을 예로 들자면 절대 책에 풀이를 하거나 낙서하면 안 됩니다. 문제는 연습장에 풀고 책에는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설명들을 적어야 해요. 잃어버릴 염려도 줄어들고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비법이죠. 필기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습 때문인데, 당연히 더 쉽고 빠르게 복습 가능한 방법을 택해야죠. 더불어 한 수학책은 적어도 세 번 이상은 봐야 해요. 대신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고르는 요령도 꼭 필요하죠. 이 부분에서 강사 역할이 참 중요한데,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가르치는 건 물론이고 학생 수준에 맞지 않는 문제는 걸러주는 능력이 필요하죠.”

여기에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말도 덧붙인다.

“잠 줄여가며 공부해 서울대 간 사람은 절대 없어요. 괜한 승리욕에 컨디션을 망쳐서도 안 되고요. 저는 고3 때도 일곱 시간씩은 꼭 잤습니다. 대신 쉬는 시간, 점심때 등 깨어있는 시간을 확실히 활용했죠. 무리한 수면 조절로 ‘낮에 조느니’, 푹 자고 나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그러다 공부에 욕심이 생기면 더는 시간·장소는 신경이 안 쓰입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 그리고 계획. 오랜 기간 몸에 익혀온 습관은 오늘날 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변화하기도 했다. 체육 시간을 정말 싫어하던 학생은 이제 그 어떤 스포츠도 기본 이상으로 해내는 체육인이 됐다.

박형돈 한국학원 원장./박일호 기자

‘내면이 강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다 책임질 각오를 해야한다’는 생활 신념처럼 그는 모든 일이든 함부로 넘겨짚거나 섣불리 판단해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딱딱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스스로 인정한 ‘이과 체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또 다른 매력이 숨어 있다.

“뭐든지 집착을 하면 안 돼요. 삶이라는 게 잘 될 때는 또 잘 되고, 안 될 때는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느새 그의 삶도 ‘문과 체질’과 맞닿아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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