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이순섭 창원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1995년 창원시의 농산물 수출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창원시의 농산물 수출액은 1억 2504만 달러에 이른다.

이는 그동안 수많은 공무원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굳이 꼽자면 창원농업기술센터 농업기술과 이순섭(53·사진) 농촌지도사가 대표공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농산물 수출 전도사로 통한다.

김해시 한림에서 태어난 그는 김해농고, 안성농업전문학교 원예학과를 졸업하고서 81년 울주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농산물 수출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비닐하우스 시설 화훼와 작물을 확대해 농가 수입을 올리는 일이 농업정책의 핵심이었다.

   

그가 수출에 눈을 돌린 것은 90년 김해시에서 일하면서다. 당시에는 장미, 거베라 등이 일본에 소규모로 수출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이 지도사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출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우선 적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 견학을 추진했다. 그는 농민들을 이끌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서 사정해가면서 일본의 농촌현장을 둘러봤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견학의 결과는 수확량 증대와 수출 증가로 이어졌다.

95년 마산의 국화 수출 시작도 그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마산시를 거쳐 96년 그는 창원시농업기술센터 발령을 받았다. 그의 농산물 수출업무는 사실 이때부터 빛을 발하게 된다.

당시 창원시는 농산물 수출 불모지였다. 그가 처음으로 수출을 시도한 작물은 가지였다. 그때까지 국내의 대규모 가지재배는 거의 없었지만 일본에서는 다이어트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시설 재배를 시작한 것이다. 처음이라 어려움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이를 견뎌내고 시작한 가지 수출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작물로 점차 확대됐다.

그는 수출에 힘을 쓰는 동시에 기술개발과 아이디어 창출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화를 1년에 많아야 두 번 생산할 수 있지만 무적심재배기술을 개발해 1년에 세번 재배할 수 있도록 했다. 시설하우스 농가 난방비 절감을 위해 다겹 보온커튼을 비롯해 여름철 하우스 온도를 낮추는 냉방기술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처럼 이 지도사는 농민과 함께 수출 금자탑을 쌓아왔지만 이는 그냥 이뤄지지 않았다. 가지를 처음 생산할 때는 설날에도 하우스에서 보내야 했다. 국화를 수출하고자 농민들과 자장면을 시켜먹으면서 밤샘작업 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또 수출을 위해 출하했던 작물이 사기를 당해 사비 500만 원을 농민에게 물어준 적도 있다. 일본에 수출한 방울토마토 경매가 늦어지면서 상품이 상해 위기에 놓인 농민을 위해 자신의 돈 150만 원을 들여 돕기도 했다.

이순섭 농촌지도사는 "그때 생각하면 말도 못한다. 밤샘은 다반사고 명절도 하우스에서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하지만 농민이 나를 믿고 따라줬고, 나 역시 농민 소득이 늘어나면서 그들 얼굴이 피고 살림이 피는 것을 보면서 견뎠다"고 회상했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창원시는 현재 신선농산물 수출 도내 4위 수준에 도달했다. 2012년 현재 창원시는 국화, 카네이션, 파프리카, 단감, 멜론, 방울토마토 등 10여 종 2만 9632t, 1억 2504만 달러어치를 일본 등지로 수출하고 있다.

이런 공이 알려지면서 97년 이후 그는 화훼, 국화 수출재배에 대해 전국적으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 그가 만든 교재는 전국에 배포돼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또 수차례의 농림부 장관상, 농촌진흥청장상, 도지사상 등 지금까지 받은 상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에는 벚꽃 공원 조성사업과 해가 지지 않는 식물공장 건립 등의 업무를 추진했다. 지금은 벼, 참깨 등 식량작물 품종개량, 우량 품종 개발, 보급사업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이순섭 농촌지도사는 "공무원, 혹은 관리자라는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제가 농민이고, 농민들이 형님이고 부모님이라는 생각으로 함께 일했다"며 "앞으로도 맡은바 온 힘을 다해 기술을 개발하고 농가 소득을 높여 사랑받는 공무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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