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능환이란 이름이 또 세인들 입에 올랐다. 대체로 실망 내지 비난조의 내용이다. 얼마 전까지 이례적인 찬사를 한 몸에 받던 그였다. 대법관까지 지낸 그가 변호사 사무실 개업이나 로펌행을 거부하고 '편의점 아저씨'의 길을 택한 덕분이었다. 당연히 미담에 배고픈 각종 매체들이 그를 가만 두지 않았고 결국 그의 이름 석 자는 대번에 청백리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불과 5개월 전의 일이다. 그랬던 그가 편의점을 접었다. 거기서 그친 게 아니라 한 대형 로펌의 고문으로 가면서 사달이 났다. 비난의 초점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결국 그럴 거면서 '청백리 쇼'를 벌여 사람들을 기만했다는 거다.

애초 편의점을 시작한 게 찬양할 수 없는 행위였다며 기다렸다는 듯 십자포화를 날리는 글도 있다. <한국일보> 서화숙 기자가 한 매체에 기고한 '쇼를 찬양하지 말지어다'란 칼럼이 대표적이다. 그에 따르면 김 고문의 연금수령액은 월 400만 원이 넘는다. 당연히 "충분히 우아하게 살 수 있"던 그가 편의점을 시작한 건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까먹었거나, 아내가 편의점 같은 걸 취미생활로 즐기고 싶어 했다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부모에게 손 벌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거다. 심지어 그게 아니면 "그냥 청승일 뿐, 사회의 귀감은 전혀 아니"란다.

지난 3월 김능환 전 중앙선관위원장이 서울 동작구 한 편의점에서 아이에게 사탕을 건네는 모습. /연합뉴스

몹시 불편했다. 거의 모든 내용이 가정법에 기초한 '라면'체인 데다 그마저도 모두 악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근거는 있었다. 김 고문이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 즉 '꾸준히 생산하지 않으면 꾸준한 마음이 어렵다'는 맹자의 이 말을 남기고 로펌으로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서 기자의 상상처럼 살았다는 근거가 되진 않는다. 게다가 설령 그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썼다 한들, 자녀들 때문에 재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한들 그게 그렇게 욕먹을 일인가?

서화숙 칼럼의 압권은 "연금으로 생활이 가능하다면 그걸로 잘 먹고 잘 사는 게 남들도 다 사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이라고 한 대목이다. 즉 연금 나오는 이상 다른 일은 하지 않는 게 옳다는 아주 황당한 주장이다. 그의 머릿속에 노동의 가치는 없다. 고액연금 소득자가 생계형 중산층 서민이 차리는 편의점에 뛰어든 게 과연 타당한 거냐는 주장도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계가 어려워 농사를 지었던가.

김 고문의 로펌행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전관예우 관행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 토를 다는 것도 아니다. 선관위원장으로서 일을 아주 잘 했으니 칭찬하자는 건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란 말을 하고픈 거다. 염치를 아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단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어쨌든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언론이 극성을 부렸지 먼저 알리고 시작한 편의점도 아니었다. 쇼는 그가 벌인 게 아니라 언론이 벌인 거였다.

설령 쇼였다 한들 어떤가? 애초에 언론의 관심도 거부하고 완강하게 인터뷰를 거절했던 그였다. 편의점 장사가 시원찮았을 수도 있고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삼권분립이란 신성한 원칙 수호를 위해 총리 제안이 온다 해도 거절하겠다던 그였다. 그 정도 법관이라면 이미 이 땅에선 예외적인 존재다. 소시민으로 살고자 노력했는데 안 되는 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런 시도는커녕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형 로펌으로 직행하는 이들에 비해 그는 여전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 사족 :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글을 쓴 사람이며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란 말을 빌려 자신을 합리화한 전직 정치인이다. 그는 작년 3월 21일 총선 패배 후 이 지면(2012년 3월 22일 자 신문)을 통해 ‘상식적인 정치지형이 될 때까지 20년을 싸우겠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독자와 유권자와 약속을 저버리고 잠시 다른 길을 가는 중이다. 반성문을 길게 쓰려 했으나 지면을 사유화하는 듯해 접었다. 이 기회를 빌려 용서를 구한다. 언젠가 반드시 그 약속 지키러 돌아오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또 다른 도전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혹 그런 이가 있다면 따뜻하게 맞아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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