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아들 박범휘가 쓰는 엄마 최인숙 이야기

'가족 구성원 중에 우열을 가리기 힘들겠지만 더 특별한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에서 아들 박범휘(25·학생)가 엄마 최인숙(48·미용실 운영) 씨를 인터뷰해 보았다. 가족구성원 중 왜 그녀가 특별한 것일까? 그도 그럴 것이 그녀 혼자만이 여자여서 그럴 것이다. 네 명의 남자에 둘러싸인 그녀…. 우리 가족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그녀와 나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려보고자 한다.

-엄마 이야기에 대해 '네 남자의 엄마 이야기'라고 제목을 지어봤는데 어때요?

"네 남자의 공주님으로 지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 아들 셋과 막내아들인 너희 아빠(박상필·51·건축업)를 키우느라 고생했는데 이제는 공주님 대접받고 살고 싶네. 네 말대로 네 남자의 엄마로 바쁘게 살다 보니 엄마도 이젠 마흔여덟이나 되었구나. 세월이 참 무색하네. 이제 숨 좀 돌릴만하니까 엄마도 늙어버렸네.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니까 더 그런 것 같다."

-엄마는 저에게 편지도 자주 써주시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셨는데, 그 좋은 말들은 공부하거나 책에서 읽으신 거예요?

"아니, 공부하거나 따로 책에서 읽은 것은 아니고, 너희 외할아버지가 나에게 무척이나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었지. 엄마 어릴 적에는 외할아버지께서 매우 바쁘셔서 한 달에 몇 번 뵙기도 힘들었거든. 집에 오실 때면 우리에게 남길 말을 라디오로 녹음해 두고 가시곤 했지. 그렇게 좋은 말씀을 들은 것이 지금까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

어릴 적 어린이날 함께 한 (왼쪽부터)동생, 엄마, 나.

-엄마랑 아빠랑 안 어울린다고들 하잖아요. 천생여자인 엄마랑 상남자인 아빠는 어디서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고향이 엄마는 전라도이고, 아빠는 경북 안동인데….

"엄마가 고등학교 2학년 될 무렵에 외가 형편이 매우 안 좋아졌어. 그래서 부산에 있는 사촌 언니 집에서 학교 다니게 되었지.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미용을 선택하게 됐다. 그렇게 되고 친구들 몰래 미용을 배우러 다녔어. 너희 아빠를 만난 건 부산 어느 길거리였어. 내가 처음 본 너희 아빠는 정말 무서워 보였다. 눈빛을 피하며 학원으로 향했지. 그러고 며칠 후였나? 어디서 많이 본 남자가 학원에 찾아왔어. 우연히 어항 청소를 하며 너희 아빠와 친해졌지. 안면을 좀 텄다고 생각했는지 너희 아빠는 밤마다 엄마가 있는 학원에 전화하고는 했지.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피하려고 했지만 아빠는 끊임없이 찾아오고 대시를 해왔어. 엄마도 아빠의 그런 용기있는 모습과 성실히 일하는 모습에 반해 출발하게 됐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뒤늦은 결혼식을 올리셨는데 무슨 이유가 따로 있으셨던 거예요?

미용실을 운영하는 엄마가 찍은 셀카.

"너희 아빠 하면 무슨 생각이 드니? 안동에서 너희 아빠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사람들에게 인기도 많고 친구에 죽고 못 사는 사람이잖아. 외가에서 반대를 하시고 너희 친할아버지도 달가워하지 않으셔서 결혼식도 못 하고 살림부터 먼저 차렸지. 그렇게 어느덧 세월이 지나 결혼식이고 뭐고 다 잊고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너희 아빠 친구들이 막 부추기더구나. 얼떨결에 뒤늦게라도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게 되었지. 그런데 웨딩사진이 이상하게 나온 거, 그게 너무 아쉬워."

-삼 형제 키우느라 고생이 말도 아니셨을 텐데….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

"하나부터 열까지 안 힘든 게 어디 있었겠어. 너 어릴 때 기억나니? 말도 엄청나게 안 들었지. 유치원 올라갈 때까지 동네 아이들 장난감 모두 합친 것보다 너 장난감이 더 많을 정도로 장난감을 좋아했어. 그걸 가지려고 생떼도 많이 썼지. 그래도 너 초등학교 올라갈 때까지 엄마랑 결혼할 거라고 맨날 애교부리고 했었지. 그런데 초등학교 올라가더니 그 말을 안 하더라고. 서운하게. (웃음) 내 자식 내가 키우는 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이제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지는구나. 네가 벌써 대학교 4학년이고, 건휘도 21살이나 됐고…. 막내 세휘가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이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네. 이제 엄마는 지금까지 너희를 키우면서 했던 것 중에서 가장 큰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너희가 성인이 되고 있는 것을 인정할 준비 말이다."

-엄마와 제가 더욱 각별한 이유가 뭘까요? 생떼도 많이 쓴 아들인데 말이죠. (웃음)

"너희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집에도 잘 안 오시니, 네가 내 남편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의지하는 바가 컸었지. 너는 내 아들이자 남편이고, 내 친구이기도 해. 아빠 엄마가 바쁜 탓에 네가 건휘, 세휘의 엄마·아빠 역할을 대신 해주었잖아."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행복한 순간도 많았을 텐데…. 언제가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너희 아빠와 우리 가족 모두 민물낚시 다니던 그때가 아닐까? 여름이면 하루걸러 낚시하러 다녔잖아. 너희 아빠는 자기가 매운탕 잘한다며 동네 사람들에게 매운탕을 퍼주어서 우리 먹을 것도 없었지만, 그 시절 너희 해맑은 웃음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도 행복해."

-아빠가 운전해서 강 건너려다 웅덩이에 빠져서 차 침수되고, 사촌 형하고 우리 식구 모두 빠진 기억나요?

"아무렴 그걸 잊을까. 모두 놀라서 창문 밖으로 겨우 나와서 석이(사촌형)한테 업혀서 강을 건넜잖아. 지금 생각해도 너희 아빠는 모험심이 참 강한 사람이야. 비가 그렇게나 왔는데 물웅덩이 건널 생각을 하니 말이다."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인터뷰에는 다 담지 못할 것 같아요. 자취하는 저에게 특별히 전할 말 있으세요?

"네가 어느덧 대학 4학년이고, 엄마는 벌써 마흔여덟이라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느라 뒤를 볼 여유가 없었다. 이제 너희가 거의 다 성장하고 나니, 이제 좀 뒤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네 남자의 엄마로 정말로 바쁘게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진 않아. 하지만 앞으로 인생은 고생한 만큼 네 남자의 공주로 살고 싶은 마음이야. 그리고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이 시기가 많이 힘들겠지만, 너도 사회의 어엿한 일꾼이 되어서 좋은 가정 꾸렸으면 해. 자취하는데 엄마가 자주 못 가보고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고…. 언제나 아들을 위해 엄마가 기도하고 있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 파이팅!"

앞으로는 네 남자의 공주님이 될 우리 엄마…. 우리로 인해 더 행복한 시간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엄마도 파이팅! 사랑합니다!

/박범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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