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만드는 사람들 (9) 조례와 언론

"진주의료원 폐업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물리력을 동원하면 맞대응하겠습니다."

지난 4월 경남도의회 야권 의원 모임인 민주개혁연대가 부쩍 바빠졌다. 경남도는 진주의료원 폐업을 결정하고 관련 조례 개정안을 이미 도의회로 넘겼다. 문화복지위원회 심사 그리고 본회의 가결까지 순서는 뻔했다. 민주개혁연대 의원은 새누리당 의원 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정상적인 의회 일정만 따라가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의회 안에서는 몸으로 버티고 의회 밖에서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과제였다. 어느덧 기자회견은 일과가 됐다.

"다른 질문 없으면 이만…. 옆에 또 기자회견이 있어서."

경남도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의원은 곧 경남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브리핑은 같은 내용으로 이어졌다. 도청에는 도의회보다 상주하는 기자가 훨씬 많다. 민주개혁연대는 더 많은 언론과 접촉해야 했고 도청 브리핑실은 그러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나중에 상황이 긴박했을 때는 오히려 도청 브리핑실을 먼저 이용하는 일이 더욱 잦았다.

◇'언론 플레이' 중요하다 = 앞서 논란이 치열한 조례안으로 '장애인 인권 조례'를 꼽았다. 1년 남짓 조례 제정 공동실천단과 장애인 시설협회가 맞서면서 조례안조차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지난 6월 26일 임경숙(새누리당·창원7) 의원은 이해 당사자를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장애인 인권 조례안'이 나오면 이를 심사할 상임위원회가 바로 문화복지위원회다. 임경숙 의원은 문화복지위원장이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실천단과 시설협회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실천단은 2~3개 일부 쟁점 조항만 정리하면 끝이라고 보는 반면, 시설협회는 오히려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섰다. 간담회는 어중간한 상황에서 임경숙 의원이 도의회에 맡겨달라고 당부하면서 마무리됐다.

지난 7월 2일 휠체어를 탄 사람이 경남도의회 브리핑실로 들어왔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앞서 임경숙 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했던 공동실천단 관계자였다. 이들은 곧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가지 조항만 빼면 모든 조례안 조항을 합의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도의회에서 논의를 하겠다면 이 두 가지 쟁점 조항만 조율하면 됩니다. 시설협회가 장애인 인권 조례 제정을 원한다면 두 가지 쟁점 조항만 놓고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기자회견은 언론을 쉽게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경남도민일보 DB

기자회견 참석자는 비장했다. 긴 시간 들였던 공든탑이 어이없게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지난 과정과 상황에 대한 대응 그리고 해석 등을 언론을 통해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작업은 앞으로 조례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공동실천단 관계자가 기자회견을 마친 30분 뒤에 또 브리핑실 밖이 웅성거렸다. 이번에는 시설협회 관계자였다.

"도의회 문화복지위원회에 모든 것을 넘겨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동실천단과 논의했던 내용은 더는 합의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시설협회를 잠정적 가해자로 단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시설협회 역시 이 같은 견해를 남겨둬야 했다. 기자회견은 의회에는 간접적인 압박을, 같은 협회 회원에게는 활동을 알리는 방법이다. 여론전에서 밀릴 수 없다는 계산까지 담겨 있다.

"언론을 통해 조례 아이디어도 얻고, 쟁점 현안에 대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다른 주체들 이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속도도 조정할 수 있고요. 아무래도 언론에 자주 언급된 내용이 조례로 제정되면 그 자체가 훌륭한 의정 실적이자 홍보로 이어집니다."

한 도의원이 언론과 의원 사이 관계를 나름대로 풀었다. 의원뿐 아니라 조례 제정 과정에 개입하고 싶은 당사자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언론이다. 공동실천단과 시설협회는 나름대로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주체다. 이런 언론이 도구가 아니라 이해관계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조례가 있다.

◇지역신문 발전 지원 조례 = '경상남도 지역신문 발전 지원 조례'는 김해연 전 의원과 문준희(새누리당·합천)·김윤근(새누리당·통영1)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2010년 8월 제안된 이 조례는 그해 9월 제281회 회기 4차 본회의에서 가결된다. 애초 이 조례는 지난 2009년 7월 도난실·김해연 전 의원과 김윤근·허기도(새누리당·산청)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하지만, 근거 법률인 '지역신문 발전 지원 특별법'이 한시법이고 경남도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심사 보류됐다. 이후 다시 상정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던 조례를 9대 경남도의회 들어 다시 발의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의회, 언론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간담회 등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문준희 기획행정위원장 나오셔서 심사 보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9월 정례회 4차 본회의, 허기도 의장이 '경상남도 지역신문 발전 지원 조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문준희 의원이 앞으로 나왔다.

"안건은 지방분권 강화와 지역여론 다양성 확보를 위해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근거를 마련하는 것으로, 지원 대상에 인터넷 신문을 추가하고 언론사별 지원한도액을 제한하며 조례 존속 기한을 2016년까지 한정했습니다."

문준희 의원은 이어 '경상남도 사무위임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 '경상남도 행정기구 설치 조례 일부 개정안' 심사 결과도 보고했다. 허기도 의장이 이어 회의를 진행했다. 질의·토론을 신청하는 의원은 없었다.

허기도 의장은 조례 가결을 선포했다. 회의를 주목하던 언론사 대표, 언론노조 관계자, 조례 제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숨을 돌렸다. 초안과 견주면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 조례는 전국 최초로 경남에서 제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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