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만드는 사람들 (8) 이해관계가 얽히는 조례

최근 경남도의회에는 논란이 뜨거운 조례안 하나와 논의가 활발한 조례안이 있다. 논란이 뜨거운 조례안은 '경상남도 장애인 차별금지 및 인권보장 조례'다. 논의가 활발한 조례안은 '경상남도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 조례'다. 특히 장애인 인권 조례는 초안이 나오고 1년 넘게 이해관계자가 대립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반면 협동조합 지원 조례는 이해관계자가 서로 이견을 조율하며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두 조례안에서 교집합은 여영국(노동당·창원5) 의원이다. 장애인 인권 조례는 여영국·강성훈(통합진보당 창원2) 의원이 공동 발의했다. 협동조합 지원 조례는 여 의원을 비롯해 조근제(새누리당·함안1)·박동식(무소속·사천2)·김경숙(민주당·비례) 의원이 공동 발의할 계획이다.

◇이해 당사자 의견을 모은다는 것 = 지난 6월 17일 경남도의회 기획행정위원회 회의실에서 장애인 인권조례 제정 간담회가 열렸다. 여영국 의원이 주최한 간담회에는 경남장애인단체총연합회, 경남장애인인권조례제정실천단, 경남장애인복지시설협회 소속 대표 12명이 모였다. 회의는 지난 2012년 10월 경남장애인단체총연합회와 인권조례제정실천단이 마련한 합의안을 두고 시설협회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장애인 인권 조례 제정 과정에서 가장 대립하는 주체는 실천단과 시설협회다. 실태조사 실효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독립적인 장애인인권센터 운영을 주장하는 실천단에 맞서 시설협회는 지나친 규제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대립이 지난 1년 남짓 장애인 인권 조례 제정이 미뤄지는 핵심 요인이다. 이날 간담회는 시설협회 관계자가 장애인인권센터 운영 주체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꼬였다. 실천단 대표는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에 시설협회 대표가 자리를 떠나면서 간담회는 끝났다.

이해 관계자 이견 조율은 조례 제정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작업 중 하나다. /경남도민일보 DB

"지원 조례에는 대체로 이해 당사자가 있습니다. 조례를 만들 때 이해 당사자 처지를 충분히 고려해야지요. 이해 당사자와 토론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여영국 의원이 시원한 생수병 하나를 꺼내서 권하며 말을 이었다. 경남도의회는 정부 절전 시책에 맞춰 냉방기를 가동하지 않았다.

"장애인 인권조례는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조례지요. 실천단 쪽에서는 더욱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조례를 만들고 싶고 실태조사 대상이 되는 시설협회 쪽에서 보면 지나친 규제가 됩니다. 언제든지 외면받을 수 있는 장애인 인권을 제도로 보장하자는 게 근본적인 취지라고 본다면 어려울 게 없을 것 같은데도…."

조례 제정 과정에서 이해관계자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결코 만만찮다. 그 의견이 대립한다면 일은 더욱 버거워진다. 차라리 제도를 정비한다거나 적용 대상이 넓은 보편적 지원 조례를 만드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만약 조례 제정을 '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이해관계가 얽히는 지원 조례 작업은 비능률적이다.

"한쪽이 밝으면 다른 한쪽은 어두울 수밖에 없는 면이 있어요.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쪽 의견을 최대한 들어서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있어야지요. 의원이 할 역할이 그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해관계 일치해도 어려워 = 장애인 인권 조례와 비교하면 협동조합 지원 조례는 그나마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조례 제정에 참여하는 협동조합 대표들이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해서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지난 7일 경남도의회 2층 상황실에서는 협동조합 지원 조례 2차 간담회가 열렸다. 역시 진행은 여영국 의원이 맡았다. 여 의원은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 조례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조례 제목을 '협동조합 활성화 지원'이라고 했습니다. '지원' 대신 '촉진'이라고 할 수도 있고 '활성화' 대신 '발전'이라고 쓸 수도 있는데 '활성화 지원'이라고 했습니다."

제목 소개였을 뿐이고 간단하게 넘어갈 내용이었다. 한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지원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말하는 것인지…. 운영에 대해 직접적인 혜택을 주겠다는 것인지…."

얘기가 길게 이어졌다. 지난 7월 1차 간담회에서 협동조합 대표 모임인 협동조합협의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전점석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이 말을 끊었다. 전점석 이사장은 간담회 취지와 앞으로 논의될 내용을 간단하게 짚으면서 다른 논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참석자들은 조항 하나, 문구 하나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토론했다.

이해관계자 처지가 같아도 합의가 쉽지 않은 이유는 조례에 대한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조례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골적이더라도 좀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조항에 담았으면 하는 이도 있다. 다양한 의견을 다시 적당한 수준에서 조정하는 것은 또 의원 역할이다.

"그래도 협동조합 지원조례는 논의 과정에서 이견이 생기면 당사자끼리 지적하면서 조율할 수 있어 나은 편이지요. 갑갑할 때도 있지만 의회에서 그런 통로를 열어줘야 합니다."

조례 제정 과정에서 토론이 지닌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종엽(통합진보당·비례) 의원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조례 개정은 몰라도 제정 과정에서는 반드시 토론회·공청회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고 보니 이 의원은 경남도의회가 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를 지원하게 된 계기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한 부모 가정 지원 조례를 만들 때 주민 의견을 듣고자 토론회를 열려고 했는데 도의회 예산이 따로 없어요. 그전에는 외부 단체에서 토론회를 마련하면 의원이 참석했을 뿐 의원이 토론회를 주최하고 거기에 예산을 지원한 일이 없었다더군요. 그때를 계기로 토론회 예산 지원을 요구했지요. 지금은 입법지원실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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