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흥미로운 말을 했다.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한겨레>와 <경향> 보도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두 언론은 지난 7월 30일 같은 날짜 신문에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번번이 휘둘리며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책임을 따지자면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새누리당 자신부터 반성하는 게 마땅하겠지만, 최 대표의 발언은 우리 언론 현실과 관련한 숙고할 만한 '진실'을 담고 있기도 했다.

기자들은 일반적인 비판·감시 기능을 넘어 특정 세력의 '플레이어'가 된 지 오래다. 진보나 보수나 예외가 없으며 정치 영역이 특히 심하다. 인적·물적·정치적 이해관계로 묶인 특정 정당에 편향되거나, 정국 대응방향을 제시하는 보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낸다. 정치인들도 예의 적극 부응한다. 거의 모든 메시지, 행보를 언론에 맞추고 '화끈한' 폭로와 주장에 온힘을 쏟는다. 더 강하게, 더 선명하게 목소리 큰 사람이 언론에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마련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가 민주당 '장외투쟁'의 원인으로 거론한 <한겨레> 7월 30일 자 보도.

언론과 정치의 유착은 대선 국면을 방불케 하는 정쟁의 일상화나 독자적 정치 노선의 소외를 낳는 핵심 원인이다. 여야 모두에 거리를 두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존재감'에 대한 보도가 이어진다. 보수·진보 언론 공히 안 의원의 이른바 '양비론'에 비판적이다. 국민 전체가 새누리파 대 민주파로 양분돼 있기라도 한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식의 논조는 확실히 폭력적이다.

최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은 잊은 채 직장인으로서 기자만 늘고 있다"고 작금의 언론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어떤 원칙과 대의보다는 조직 내지 개개인의 이해관계에만 충실한 기자들 모습에 대한 쓴소리였다. 하지만 기자들 줄 세우기에 가장 앞장서는 집단이 바로 정치권이다. 이를테면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21일 국정조사에서 자신의 막말을 그대로 보도했다며 <한겨레> <경향>을 향해 "조·중·동과 매한가지"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막강한 권한과 정보를 틀어쥔 제1야당 정치인이 조금만 불리한 보도가 나와도 '우리가 남이가'란 식으로 생떼를 쓰는 현실에서, 해당 언론과 기자가 냉정한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박영선 의원. 어쩌면 그는 언론인을 '직장인'으로 추락시키는 데 가장 큰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 중 한 명이다. MBC 경제부장으로 일하다 지난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된 소위 '폴리널리스트'(polinalist)의 대표 주자이기 때문이다. 현직 기자가 별 휴지기도 없이 특정 정당으로 몸을 옮겼을 때, 공정성과 독립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언론인으로서 남은 사람들의 자긍심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그간 사명감을 갖고 보도한 내용은 '특정 정당을 위한 편파'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까놓고 말해 나만 지조 있게 일하면 뭐하나, 다른 동료들은 어찌 되든 말든 죄다 자기 살길 찾기에 바쁜데. 그냥 '영혼 없는' 직장인으로 살거나 하루라도 빨리 어디 줄 서는 게 일신의 영달에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모든 영역이 그렇지만 언론 역시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한때는 '독립'이니 '정론'이 최대 화두였지만 '생존'이 그 자리를 대체한 지 오래다. 언론의 퇴행적인 행태는 더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늘 '동지'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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