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통해 대립각 세운 홍지사…'대통령병'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약한 고리는 자신의 아버지다. 자신은 둘째 치고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대하는 사람은 참아내지 못한다. 김재규는 물론이고 재판에서 그를 변호했던 사람들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하는 건 그녀로서는 당연한 효심인지 모른다. 반대로 아버지 때 임명된 관료의 자식들은 대를 이어 발탁하고 있다. 임명권자의 마음을 잘 알았는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는 박근혜 후보 시절 박대통령 부모 사진을 휴대전화에 달고 다니는 처신을 보였다.

홍준표 지사가 박 대통령의 사부가를 모를 리 없다. 아무리 처신이 가볍기로 호가 난 홍 지사라도 박정희 때 도입한 국민건강보험이 좌파 정책이라고 한 건 생각 없이 나온 발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 요량으로 작심하고 날린 회심의 '돌직구'를 통해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문제에서 미적거렸던 박 대통령을 자극하여 홍준표 대 박근혜의 대립 구도를 만들려고 했다. 지난 선거까지만 해도 박근혜의 러닝메이트임을 강조하며 박근혜 이름으로 표를 빌던 시절이 새삼스럽다.

홍 지사가 도지사 자리에 만족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권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좀처럼 중앙 언론을 탈 일이 없는 지방 도지사에 흡족할 리는 없다. 경남 사람들이 서울을 제외한 다른 광역지자체 수장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경남 도지사도 다른 지역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그에게 도지사는 중앙 정계로 복귀하기 위한 발판일 뿐이다. 아니다. 그의 꿈은 좀 더 크다. 그는 포스트 박근혜를 꿈꾼다. 홍 지사의 대통령 꿈은 오래되었다. 정치에 입문할 즈음 점쟁이가 빨간 넥타이를 매면 출세한다고 알려준 뒤부터였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여권에서 차기 대선 주자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그의 상상력을 무럭무럭 키운다. 현직 대통령의 총애를 얻지 못할 바에야 아예 대놓고 그와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현 정권을 쇄신할 수 있는 사람처럼 돋보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TK 성골 출신도 아니고, 누구처럼 부모의 후광도 없는 입지전적인 경력에다, 욱 하는 성질까지 홍준표는 여러모로 박근혜와 맞지 않는다. 더욱이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임기 말년 대통령의 레임덕은 불가피하다. 그때쯤 대통령의 인기도 바닥일 터이니 그의 총애를 구하는 것은 별 승산이 없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정권 계승의 구도는 하나같이 전임 대통령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권 승계 구도에서 전임 대통령이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김영삼, 노무현, 박근혜의 위상을 홍 지사도 꿈꾸고 있다. 그의 전략이 아직은 순조로워 보인다. 일개 지방 도지사의 도발에 힘입어 진주의료원 사태는 한동안 중앙 정치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지위를 누렸다. 진주의료원을 통해 공공의료의 역할이 재조명된 것도 역설적으로 홍 지사의 공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하나마나한 말만 하는 데 그치고, 국회는 홍 지사가 증인 출석과 소환장을 거부해도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 카드 하나로 정부와 여당 말도 먹히지 않는 여당 도지사의 위상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정부와 여당이 설설 기는 것은 홍 지사가 겁나서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굼떴기 때문이며, 아버지를 한국 복지의 선구자로 생각하는 딸이 아버지의 복지 정책이 빨갱이로 매도당하는데도 발끈하지 않는 것은 복지를 마뜩잖게 보는 영남 보수층을 자극하지 않기 위함이다. '강성노조' 운운도 보수에는 얼마나 향수 가득한 고향 언어인가.

   

대통령도 못 말리고 정부·여당도 수수방관하는 사이 홍 지사는 기가 펄펄 살았다. 급기야 맘에 안드는 기자들을 손봐주겠다고 한다. 대통령, 소속 정당, 언론과 승부하는 것은 죽을 각오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아군이 될 수 있는 이들도 적으로 돌려세우는 배짱, 그러나 어떤 병법 책도 그걸 용기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대통령 병이 심하다는 증거다. 합리적인 사고가 아쉬운 환자의 대권 구상이 순조로울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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