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야 뭐하니?] (13) 귀제비

어릴 적 우리 집 동쪽 지붕 아래 귀제비가 둥지를 튼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집에 재수가 없다고 당장 귀제비 집을 부숴버리라 하셨다. 아무 죄없는 귀제비가 둥지를 짓다 말고 쫓겨 나서 미안했던 맘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왜 제비는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좋아하면서 반대로 귀제비는 싫어할까? 우리 조상들은 집에 거미·귀뚜라미·구렁이·두꺼비가 들어와도 재수가 좋고 손님이 온다고 하면서 매몰차게 내쫓지 않았는데 유독 귀제비에게만 이렇게 가혹했을까?

귀제비는 동네마다 이름이 다르다. 맹매기, 명(또는 밍·멩·멍)내기, 명마구기, 밍열이, 액(앵)매기, 명(맹)재기, 굴(뚝)제비, 귀(신)제비로 이름이 아주 많다. 보통 맹내기라고 많이 부른다.

귀제비 /오광석

귀제비라는 이름은 조류학자가 붙인 이름인데 왜 귀제비라고 했는지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일본 이름은 붉은허리제비(コシアカツバメ 고시아카츠바메 腰赤燕)다. 북한에서도 붉은허리제비라고 한다. 중국 이름도 금요연(金腰燕)인데 붉은허리제비와 비슷한 뜻이다. 중국에서도 붉은허리제비(赤腰燕)라고 부르거나 둥지를 짓는 것이 꾀가 있다고 교연(巧燕)이라고도 부른다. 영어 이름도 붉은엉덩이제비(Red-rumped Swallow)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옛문헌에는 호연(胡燕)이라고 기록하면서 일반 제비와 확실하게 구분을 했다.

귀제비는 이름 유래도 참 애매하지만 왜 재수 없는 새가 되었는지 더 궁금하다.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와 경로당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첫 번째 명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보이는 새라는 뜻이다. 명나라 말기에 제비와 비슷한 새가 떼지어 궁전 대들보 위에 앉았다. 호위 병사에게 쫓아버리라고 했지만 쫓으면 쫓을수록 더 모여들었다고 한다. 훗날 명나라가 망하는 새라고 명말조(明末鳥·명매기), 명망조(明亡鳥)라고 불렀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둥지 모양이다. 에스키모 집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조롱박을 반으로 잘라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무덤을 엎어 놓은 것처럼 보였는가 보다. 생긴 모양이 무덤을 엎어 놓았으니 재수가 없고 액운을 불러 온다고 믿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귀(신)제비라고 하거나 귀제비가 집을 지으면 액운이 있다고 했을까? 둥지 입구가 좁아서 '맹매기 콧구멍'이란 말이 있다.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사람을 맹매기 콧구멍이라고 한다.

귀제비의 둥지. /정대수

세 번째 이유는 제비 집을 빼앗고 이상하게 리모델링(?)해 버리기 때문에도 한 몫했을 것이다. 복을 주는 착한 제비를 괴롭히는 나쁜 제비라는 미움과 비슷하게 생긴 짝퉁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이유는 둥지를 짓는 곳이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에 둥지를 틀지만 귀제비는 사람에게 쫓겨서 사람이 살지 않는 재실이나 다른 곳에도 둥지를 만든다. 귀제비는 지금도 2층 이상 높은 곳에 둥지를 짓는다. 사람이 대나무 작대기로 부수지 못하는 높은 곳에 짓는다. 농협 창고, 학교 체육관, 주유소 지붕, 학교 지붕, 가게나 상가 2~3층에 집을 짓는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둥지를 만든다. 요즘엔 그나마 둥지 지을 곳이 모자라서 귀제비 둥지는 여러 둥지가 함께 모여 집단으로 집을 짓는다.

귀제비는 제비보다 더 보기 어렵다. 제비가 100마리라면 귀제비는 한 마리 볼까 말까 한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제비와 가장 미움을 받는 왕따 새 귀제비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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