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고구마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온다는 처서가 지난 지도 며칠 되었지만 아직도 더위는 아쉬운 듯 여름의 끝자락을 머뭇거린다. 동네 마켓의 식료품 코너에는 각종 과일과 농산물이 풍성하다. 그 중 붉은 황토가 터실터실 묻은 고구마가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릴 적 온 가족이 둘러앉아 양푼에 담긴 삶은 고구마로 간식을 즐기던 시절이 생각난다.

◇유래

고구마는 감자와 더불어 조선 후기에 수입된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로 알려져 있다. 15세기 후반 유럽에 전해졌고,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 타이완, 오키나와를 거쳐 일본까지 전해졌다. 우리나라에는 18세기 일본 대마도를 거쳐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사쓰마이모(さつまいも) 또는 '간쇼(かんしょ)'라고 한다. '이모(いも)'는 땅속의 덩이뿌리나 알줄기를 뜻하는 말로 마·토란·감자·고구마 따위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또 '사쓰마'는 일본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 지역의 옛 지명으로, 이 지역은 일찍부터 서양문물을 활발히 받아들인 곳이다. 고구마는 사쓰마 지역을 거쳐서 일본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그래서 '사쓰마이모'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고구마 꽃

'간쇼'는 고구마를 뜻하는 한자어 '감저(甘藷)'를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여기서 한자 '저(藷)'는 '서(薯)'와 함께 본래 참마 같은 마 종류의 식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마는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덩이뿌리를 캐어 먹거나 약으로 썼다. 그래서 마와 형태나 성질이 여러모로 비슷한 감자와 고구마 같은 외래 작물의 이름에 이들 한자를 붙이게 되었다. 즉, 고구마는 맛이 달기 때문에 '달콤한 마'라는 뜻으로 감저(甘藷)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그렇다면 우리말 '고구마'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고구마를 뜻하던 쓰시마 지역 방언인 '고코이모(孝行藷, こうこういも)'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하다. '고코'는 '효행(孝行)'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고, '이모'의 뜻은 덩이뿌리이다. 결국 고구마는 '부모를 섬기는 요긴한 덩이뿌리'라는 속뜻이 담겨 있다.

◇고구마 꽃

고구마 꽃을 본 적이 있는가? 얼마 전 인근 밭에서 핀 고구마 꽃을 보면서 매우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우리 서민들의 흔한 먹거리였던 고구마지만 직접 심고 수확해본 적은 없고,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는 고구마순이 달린 줄기를 땅에 심어서 기르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고구마도 열악한 환경에서는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분홍빛으로 외롭게 핀 고구마 꽃을 보며, 지금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본다.

/김인성(창원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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