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만드는 사람들 (5) 정치에서 나오는 정책

조례 제정 과정에서 집행부와 의회 협조를 얘기했지만 그보다 더 협조가 절실한 관계는 여야다. 특히 소수인 야당 의원은 여당 협조가 필수다. 경남도의회 구성만 보면 야당은 발의까지는 가능해도 조례 상정과 가결은 여당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수인 여당 의원은 상대적으로 조례를 다루는 과정이 수월하다. 하지만, 야당이 마음먹고 버텼을 때 조례 하나 처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올 상반기 '진주의료원 조례' 개정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 상정된 이 조례로 본회의는 두 차례 유회됐다. 그리고 결국 6월 본회의에서 여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겨우 처리할 수 있었다. 여야 모두 어떤 정책을 조례로 만들더라도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정치력이다.

◇가까스로 가결한 '비정규직 지원법' = 지난 5월 9일 경남도의회 경제환경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다. 황종원(새누리당·하동) 위원장은 석영철(통합진보당·창원4) 의원에게 '비정규직 근로자 권리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 제안 설명을 부탁했다.

"위원님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그간에 여러 가지 저 때문에 불편하신 점에 대해서는 이 자리를 빌려서 진심으로 사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석 의원은 조례 제안 설명에 앞서 사과부터 했다. 앞서 4월 임시회 때 야당이 진주의료원 조례 개정안 처리를 반대하면서 본회의장을 점거한 일, 그리고 본회의가 두 차례 유회된 일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잠시 접어달라는 당부였다. 쟁점 현안에 대한 여야 대치는 대치고, 조례는 또 조례였다.

"이번 조례는 여러 가지 법률 검토를 꾸준히 했고 집행기관과 충분한 협의도 이뤄졌습니다. 지난 1월 공청회도 한 번 했습니다. 위원님들이 잘 좀 헤아려 주시기 부탁합니다."

조례안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먼저 정재환(새누리당·양산2) 의원이 물었다.

"제7조 협의회 구성에서요…. 인원이 13명인데 어디 한쪽으로 너무 쏠리지 않는지…."

"비정규직 문제는 특화된 논의기구가 필요하고…. 비정규직 관련 전문가가 모여 협의하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을…."

위원회 인원 구성에서 분야별 배분에 관한 지적이었다. 질문과 답변은 계속 이어졌다.

"조례안 내용이 '~노력하여야 한다', '~할 수 있다.' 이런 데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닌가요?" (김정자 의원)

"공동 발의한 분 모두가 민주개혁연대 의원으로만 구성돼 아쉽습니다. 새누리당까지는 아니어도 무소속 의원만 좀 들어 있어도 좋은데 약간 아쉽네요." (정판용 의원)

"법률 규정이 추상적이면서 강제적인 내용이 있으면 집행에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감을 잡을 수는 있지만 법률은 그래서는 안 되거든요." (서진식 의원)

   

입법지원실과 교수 조언을 나름대로 충분히 받은 조례였다. 집행부 토론, 공청회까지 거치며 의견을 받았다. 하지만, 상임위원회에서는 또 조례에 대한 문제점이 터져 나왔다. 석영철 의원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황종원 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했다. 10분 동안 정회하고 회의가 이어졌다. 경제환경위원회는 비정규직 지원 조례를 심사 보류했다.

석영철 의원은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제가 부덕해서 그런가 봅니다"라고만 얘기했다.

결국, 이 조례안은 지난 7월 제309회 회기 4차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공동 발의'의 효용 = "조례 공동 발의도 하시잖아요. 만약 세 분이 공동 발의하면 일을 각각 3분의 1만큼 합니까?"

질문을 받은 이성용(새누리당·함안2) 의원이 슬쩍 웃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도하는 의원도 있고, 뜻에 공감하는 의원도 있고…. 일을 나눠서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를 실적 나누기 정도로 낮춰보는 것도 무리한 시각이라고 봅니다. 결국, 조례 제정 과정에서 의원의 협조는 필수고 그런 점에서 '공동 발의자'가 많은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지요. 또 여야 의원이 함께 발의하면 더 좋고요."

이 의원은 이종엽(통합진보당·비례) 의원과 함께 작업한 '경상남도 한부모가족 등 지원 조례'를 예로 들었다. 이 조례는 2011년 3월 이종엽·이성용 의원이 공동 발의해 4월 제286회 회기 4차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원래 저와 이종엽 의원이 따로 준비하던 법이었어요. 저는 '미혼모'에 중심을 맞춰 준비했고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종엽 의원이 비슷한 내용으로 조례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함께 묶기로 했지요. 결과적으로 더 좋은 조례를 만든 것 같습니다. 평가도 괜찮았고…."

조례 내용도 좋았지만 조례 처리 과정도 무난했다. 이종엽 의원은 건설소방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이었고 해당 조례는 문화복지위원회가 처리할 내용이었다. 이성용 의원은 문화복지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이다. 이종엽 의원 혼자라면 혹시나 뚫기 어려웠을 과정은 이성용 의원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종엽 의원은 "다른 조례도 될 수 있으면 꼭 여당 의원을 공동 발의자로 올리려고 한다"면서 "상임위원회로 넘어가면 또 해당 위원장에게는 얼마나 부탁하는지…"라며 웃었다.

여영국(노동당·창원5) 의원은 조례 제정 과정에서 정치력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여 의원은 준비를 많이 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가결하지 못한 조례가 제법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꼭 필요한 조례를 만들어서 내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위성 문제로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여당과 협조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결국, 그쪽이 다수잖아요. 좋은 조례를 제정하고 싶다면 다수 협조를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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