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만드는 사람들 (4) 멀고도 가까운 의회와 집행부

경남도의회에서 '집행부'는 경남도청을 뜻한다. 또 실무를 집행하는 전담 부서를 의미하기도 한다. 집행부, 즉 행정과 의회는 대체로 긴장 관계다. 의회 중요 기능 가운데 하나가 주민을 대표해 행정을 견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례만 놓고 보면 의회와 집행부는 서로 동전 양면과 같은 존재다. 행정 협조 없는 조례는 그 의미야 어떻든 '실효성'을 잃는다. 행정 협조 또는 지원이라는 것은 바로 예산 문제다. 집행부가 확보하려는 예산은 또 의회 허락을 거쳐야 한다.

큰 맥락은 이렇고 좀 더 과정을 들여다 보면 의회와 집행부 협조는 더 세밀하다. 의회 또는 집행부 안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과제 가운데 일부는 상대 기관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민원'이 된다. 그 지점에서 협조는 드러나지 않게 이뤄지기도 한다.

경남도는 '공동주택 품질검수단 조례'를 근거로 2012년 3월부터 '품질 검수단'을 운영한다.

◇조례 실효성은 집행부 설득과 비례 = "조례 검토할 때 집행부는 대체로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예산 문제도 쉽지 않고 일도 자꾸 생기고…. 그래도 예산만 보면 쓰지 않아도 되는 예산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지요. 그런 것을 찾는 것도 조례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성용(새누리당·함안2) 의원은 새누리당 안에서도 젊고 부지런하며 유능한 의원으로 꼽힌다. 9대 경남도의회가 가결한 조례 가운데 이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조례는 6건이다. 이 의원 말처럼 조례를 통해서 나오는 정책은 집행부 처지에서 보면 없던 일이 만들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든 돈(예산)까지 마련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행정으로 추진했을 때 나중에는 평가도 받아야 한다. 그 평가 주체가 또 도의회다. 집행부 처지에서 보면 그렇게 달가운 과정이 아니다.

이성용 의원 얘기는 다른 주제에서 또 듣고, 이번 주제에서는 이종엽(통합진보당·비례) 의원을 만나 보자. 창원시의회 부의장까지 거치고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도의회에 들어온 이 의원은 여야 의원, 집행부 사이에서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곤 한다.

"조례 발의 환경만 보면 시의회보다 도의회가 훨씬 낫지요. 일단 도의회는 야당 의원이 10명이 넘으니까 발의 조건을 맞출 수는 있잖아요. 시의원 때는 의원들 설득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창원시를 설득해 집행부 발의 형태로 조례를 가져가기도 했지요."

집행부와 도의회 구성을 먼저 살펴보자. 홍준표 지사가 새누리당, 경남도의회 의원(교육위원 포함) 58명 가운데 40명이 새누리당이다. 도의회 내 야당 의원 모임인 '민주개혁연대' 소속 의원은 11명이다. 야당만 놓고 보면 의원 발의 조건(10명 이상 연서)만 채울 수 있을 뿐 본회의 가결까지 반드시 새누리당 협조를 얻어야 한다. 반면 새누리당 의원은 소속 의원만으로도 모든 조례 제정 과정을 처리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집행부(도지사) 발의안도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의회에서 막히지 않는다. 집행부 설득은 조례 제정 과정뿐 아니라 사후에도 중요하다. 결국, 예산을 들여 사업을 집행하는 것은 의회 일이 아니라 집행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례 제정 과정에서 아쉬운 쪽이 늘 의회는 아니다. 의회에서 잘 처리되지 않는 조례를 집행부에 부탁하는 것처럼 집행부 역시 도청 안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정책을 의회로 들고오기도 한다. 가깝고도 먼 집행부와 의회 관계 한 면은 조례 제정 과정에서도 얼핏 엿보인다.

◇집행부와 함께 공감한 조례 = 그런 점에서 이종엽 의원이 꼽은 성과는 '공동주택 품질검수단 조례'이다. 정식 이름은 '경상남도 공동주택 품질검수단 설치 및 운영 조례안'으로 2011년 9월 30일 제안해 그해 11월 제291회 회기 2차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창원에 재건축·재개발 지역도 많고 공동주택 관련 민원이 많았습니다. 이를 제도적으로 줄일 방법을 고민하다가 경기도가 공동주택 품질검수단 조례를 운영하는 사례를 찾았지요. 당장 경남도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의원은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던 집행부에 꾸준히 협조를 구했다. 경기도 조례를 공유하고 나서 입법지원실, 집행부 담당자와 경기도 출장을 함께 갔다. 현장에서 경기도 공무원에게 실제 운영에서 어려운 점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간 공무원이 조례만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조례에는 운영 과정에서 나오는 세밀한 문제점, 이해관계, 알력 등이 잘 나오지 않잖아요. 이 과정을 통해 집행부와 조례 제정 당위성에 대해 상당 부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경남도는 2012년 조례를 근거로 '품질 검수단'을 운영한다.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 150가구 이상으로 승강기가 설치된 공동주택, 150가구 이상으로 중앙집중식 난방 방식을 가동하는 공동주택 등이 품질 검수 대상이 됐다.

"집행부와 공감도 충분했고 공동 발의자로 여야 의원을 고루 넣었어요. 건설업 처지에서 보면 불리하고 야당 의원이 낸 조례지만 과정이 충실했는지 별 무리 없이 통과됐어요."

이 의원이 발의한 이 조례는 건설소방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정 없이 원안 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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