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학습지 교사 김경숙 씨

'딩동' '딩동'

어릴 적 엄마 아빠의 손님이 아닌 '내 손님'이 집에 온다는 설렘과 기다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가 문 앞에 섰다. 한아름 책보따리를 안고서 환하게 웃는 선생님이 들어서면 허리 90도 숙인 인사를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내 머리에 닿는 부드러운 손. 그 손이 내 머리를 왔다갔다하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에 몸이 배배 꼬이곤 했다.

내가 그랬듯 6살 딸아이도 일주일에 한번씩 집에서 만나는 학습지 선생님이 오면 소리를 지르고 폴짝폴짝 뛰며 좋아한다. 20여 분의 수업시간이지만 아이와 선생님은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내 아이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그녀의 교육관, 삶이 궁금하기에 자연스레 대화가 이어진다.

이름은 김경숙(사진). 나이는 46세. 학습지 교사를 한 지 12년째다. 옛 창원전문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해 미술학원을 4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일대 아이들의 집을 방문해 수업을 하고 있다. 하루에 20~25명, 일주일에 1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주책맞게도 엄마로서 제일 궁금한 것은 무엇보다 "내 아이는 좀 특별한가요?"였다.

   

김 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이 100여 명 모두 특별하다는 거짓말 같은 대답을 한다. 김 씨는 "일주일에 한번 보는 아이들 얼굴임에도 보자마자 저번주 수업했던 시간들, 상황이 떠올라요. 자연스럽게 지난 수업과 이어지죠. 주어진 시간에 오롯이 집중하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아이를 집중시키는 하이톤 음성, 몸짓, 다양한 목소리와 더불어 기억력 또한 이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12년 전 이 일을 시작하기까지 가족의 반대도 많았다. 5살 딸아이와 돌 지난 아들을 잘 키우길 바라던 남편이었다.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시작했다. 3년 전 시어머니가 암으로 입원했을 때도 남편은 또한번 김 씨가 이 일을 그만두기를 바랐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는 김 씨는 그 시간 또한 견뎌내며 지금 이 순간까지 왔다. 지금은 남편도 김 씨의 열정에 두손 두발 다 든 상태다. 이토록 이 일이 좋았던건 김 씨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냥 집에만 있으면 뭔가 뒤처지는 기분이었고, 아이들만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따르고 기분이 좋아지는 게 이유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당연히 인정을 받을 때라고 한다. 몇년 전 6세 아이를 가르칠 때였다. 아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산만하고 난폭적이었다. 아이 엄마는 늘 일상 속에서 마주친 모습인지 그냥 별나다 정도로만 여기는 듯 했다. 한달 넘게 수업하면서 관찰했다. 그리고 아이 엄마에게 ADHD(과잉행동장애)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했다. 아이 엄마는 놀라고 아빠는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김 씨의 설득 끝에 아이는 병원을 찾았고 ADHD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약물치료로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 이후 부모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 씨는 "일주일에 잠깐 보는데 뭘 알아?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이 '매일 봐서 전 잘 모르겠어요'예요. 일상이 되다보니 집중 못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20~30분의 시간은 오롯이 그 아이만을 위한 시간이잖아요. 그 아이하고만 눈 마주치고 자기하고만 이야기하게 되죠.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요"라며 학습지 교사로서 자부심을 드러낸다.

물론 아무리 고치려 해도 건방진 아이들도 더러 있다. 자세도 삐딱하고 대답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선생님도 억지로 웃으며 수업할 때가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소수라고 한다. 유치부 담당이다 보니 대개는 3~4년, 10년째 같이 수업하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선생님으로서 부모님께 바라는 건 뭘까?

김 씨는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똑똑한 줄 알아요.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하나를 열 번 반복해야 아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 차이는 인정 않고 학습지 효과를 판단하는 분들이 많아요. 전 아이들마다 이런 방법, 이정도 시간이면 가능하겠다라고 판단이 되는데 엄마들이 기다리질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요일까지 보충수업해주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 부모님들은 학습지 교사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라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10년 만 더 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딪치고 싶다는 김 씨. 10년 후엔 엄마를 따라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딸과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어렵지 않게 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그 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장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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