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등산용품 전문매장 운영하는 박명근 씨

'등산용품 전문매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여러 회사에서 출시한 등산용 제품들을 진열해 놓은 상점들을 이제는 거의 볼 수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간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유명 연예인들을 전면에 내세운 형형색색의 '브랜드 대리점'만이 길거리에 넘실거릴 뿐이다.

그런데 여기 한 자리(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에서 30년 동안 '등산용품 전문매장'을 운영해온 박명근(60) 씨가 있다. 창원 시내에서 몇 안 되는 가게이지 싶다. 실제 명근 씨는 "지금 마산에서는 이런 가게가 다 사라졌고 여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나이는 환갑에 이르렀지만 그는 '산 사나이'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젊은 시절 산에 미쳐서" 전국을 주유했고, 갑자기 찾아온 병 때문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으며, 그런 그를 다시 산이 일으켜 세웠던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산'이 되고 있었다.

명근 씨가 "산에 미쳤던" 연유는 무엇일까? 20대 중반, 머리를 깎고 입산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내 자아심을 이기지 못해 피난을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포기했다. 그리고 그의 앞길에 산이 펼쳐졌다.

한창 전문 가이드로 활동하던 1990년 겨울 태백산 문수봉에 오른 박명근 씨.

산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절이었다. 산악회를 조직하고 전문 가이드 생활도 하면서 산속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20여 년 전, 전문가이드로 활동하던 때였다. 90명을 인솔해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후 인원점검을 해보니 2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장터목으로 갔다가 다시 천왕봉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법계사까지 30분 만에 주파해 낙오자 2명을 찾았다고 한다. 중요한 건 전설적인 추억담이 아니었다. "저는 선배님들한테 배운 대로 FM대로 교육을 합니다. 위험한 곳을 지날 때는 웃지도 못하게 합니다. 입을 열면 나태해지거든요."

자연을 이기려 하지 말고, 융화해서 같이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이 곧 산행이었다. 전국에 다녀오지 않은 산이 거의 없지만 백두대간 종주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리해서 산을 타는 건 좋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명근 씨는 '결핵성 심장병'으로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 수술 끝에 생명을 건졌다. 하지만 의사는 '등산을 하면 안 된다'는 처방을 내렸다. 심장이 안 좋으니까.

그러나 명근 씨는 산을 탔다. 매일 새벽마다 천주산을 올랐는데, 처음에는 기다시피 해서 정상에 오르는데 6시간 이상 걸렸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까 투병하기 전 절반 수준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박명근 씨. /임채민 기자

이때부터 명근 씨는 약초공부를 시작했다. 각종 교양강좌를 섭렵하고 방송통신대학 강의도 들었다. 전문 약초꾼들을 따라 3년 동안 또 산을 헤매고 다녔다. 다시 '약초를 알고 몸을 알아가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지금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창원 반림동 동사무소에서 매주 약초 특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주일에 2∼3번씩 약초를 캐고, 이것들을 정성스럽게 손질해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 가까이에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초가 있습니다. 또 흔한 것이 약초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에 맞는 약초를 물에 끓여서 먹는 것보다 더 좋은 약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명근 씨의 생각이다.

"공부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좋다"는 명근 씨는 지인들과 함께 '참사랑 나눔회'라는 모임을 하고 있다. 한 달에 2만 원씩 모아 1년에 한 번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쌀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이제 곧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도 발간할 예정이다. 지난 세월 산에서 느낀 것들을 기록하다 보니 곧 노래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게를 리모델링해 약초 전문 매장으로 꾸밀 예정이다. 등산용품 판매가 생업이 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음을 비우고 자유롭게 거닐면 병이 없죠. 그래서 산을 찾는 것이고요. 그런데 요즘은 자연에 동화되기보다는 다들 패션쇼 하려고 산에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하."

세속의 흐름을 정신없이 쫓다 보니 '산'이 있어도 '산'을 보지 못하고, '산'이 무엇인지도 더더욱 알 수 없는 시절이다.

그래서 "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명근 씨는 "어머니"라고 했다. "사람들이 살을 깎아도 말이 없고, 그러면서도 포근하게 감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듬직하게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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