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를 만드는 사람들 (3) 행정에서 정책과 선심 구분

9대 경남도의회에서 현직 의원 가운데 조례 대표발의 건수가 가장 많은 이는 심규환(새누리당·진주4) 의원이다. 심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조례는 모두 9건이다. 이어 이성용(새누리당·함안2) 의원이 6건, 이종엽(통합진보당·비례)·임경숙(새누리당·창원7) 의원과 조형래 교육위원이 각각 4건을 대표 발의했다. 사퇴한 도의원까지 포함하면 가장 대표 발의 조례가 많은 이는 김해연 전 의원(12건)이다. 공영윤 전 의원도 사퇴 전까지 조례 6건을 대표 발의했다. 현직 도의원 가운데 한 건 이상 조례 대표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의원은 29명으로 확인됐다.

◇조례 근거 없는 행정은 선심 = 일상에서 만나는 심규환 의원 인상은 다소곳한 편이다. 목소리도 작고 말투도 조곤조곤하다. 정치인다운 외향적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심 의원은 도의원으로 출마할 때 주민에게 명함 건네는 것조차 부끄러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서 현안을 놓고 부딪칠 때 모습은 전혀 다르다. 현안에 대한 해석이 다른 야권 의원을 다그칠 때나 행정에 허술함을 보인 공무원을 몰아붙일 때는 인정사정없다. 내용에서 부딪치면 같은 당이라고 해서 편하게 넘어가지도 않는다. 사람마다 호오는 갈리지만 심 의원은 경남도의회에서 가장 불편하고 부지런한 의원으로 꼽힌다.

"공무원도 뒤에서 욕 많이 할 겁니다. 그래도 뭐가 아니다 싶으면 그냥 넘어가는 성격이 못돼서…."

심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이름을 올린 조례를 보면 △노인 구강 보건사업 지원 조례 △청소년참여위원회 구성 및 운영 조례 △산후조리비용 지원 조례 △경남학숙 설치 및 운영 조례 △의로운 도민 등에 대한 예우 및 지원 조례 등이 눈에 띈다. 하지만, 조례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심 의원이 당장 언급한 조례는 '경상남도 학생 현장체험학습 활동지원에 관한 조례'였다. 2011년 4월 고영진 도교육감이 제안한 조례로 같은 달 제286회 4차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대체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조례를 찾기 어려워요. 지역민에게 두루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조례로 정하기 어렵지요. 예산 문제도 있고…. 그런데 애들 수학여행 무상으로 보내주자는 정책은 바로 와 닿잖아요."

이른바 '무상 수학여행'은 고영진 교육감 공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혜택을 주는 정책이 선거법에서 '기부 행위'에 걸릴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려면 조례로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과 예산 근거를 조례로 만들어두면 그때부터는 정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조례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조례 범위는 경남도에 한정됩니다. 그렇게 볼 때 국립 초등학교는 지원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교육감이 교대를 통해 예산을 주는 식으로 지원했지요. 엄밀하게 보면 편법이고 이는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법대로 하자니 뻔한 형평성이 문제고, 형평성을 맞추자니 위법이고. 그런데 어느 날 위법처럼 보이던 내용이 합법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근거가 심 의원에게 번뜩 스쳤다. 생각을 정리한 심 의원은 바로 교육감에게 전화했다.

"조례를 근거로 국립 초등학교에 지원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수학여행 비용을 초등학교에 지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초등학생, 정확하게 얘기하면 초등학생 보호자를 지원하는 거죠. 기관이 아니라 민간에 대한 예산 지원, 즉 민간 자원 보조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합법이거든요."

조례 조항 하나 바꾸지 않고 위법을 합법으로 해석해낸 것이다. 심 의원은 조례는 만드는 것뿐 아니라 해석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경남도 행정 관련 조례에서 문제가 있거나 다른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내용이 보이면 조항마다 따져가며 유난스럽게 꼬집어 낸 계기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 조례로 2011~2013년 혜택을 본 초·중·고생은 15만 6715명에 이른다. 예산은 222억 원이 들어갔다.

◇좋은 조례의 조건 = "경남도가 추진하는 행정, 설치하는 기구 등은 조례를 근거로 하는 게 맞습니다."

앞서 '무상 수학여행' 정책처럼 행정이 조례를 근거로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효율적인 행정을 추진하고자 자치단체장이 기구를 구성하는 것까지 조례를 근거로 해야 한다는 것은 선뜻 와 닿지 않았다.

"지자체장이 협의회나 기구 등을 마음대로 만들면 이는 또 자리 나눠주기로 악용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기구에 예산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의회 견제를 받아야지요."

심 의원은 이 같은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김두관 전 지사 도정 당시 민주도정협의회를 비롯한 각종 자문기관, 기구, 위원회 등은 조례를 근거로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심규환 의원이 생각하는 '좋은 조례'가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먼저 지방자치단체 예산 안에서 지역민에게 두루 혜택이 돌아가는 조례를 높게 평가했다. 이를테면 '무상 수학여행' 조례가 그런 조건에 맞아떨어진다. 그럼 점에서 심 의원은 자신이 대표 발의한 '산후조리비용 지원 조례'에도 의미를 뒀다.

2011년 9월 제290회 회기 2차 본회의에서 가결된 이 조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계층 산모에게 산후조리비용을 지원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경남도는 올해 추경에서 관련 예산 3억 1000만 원을 확보하여 620명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예산 지원이 늦어서 기대를 많이 안 했는데 이번에 경남도가 추진하기로 했어요. 산후조리원뿐 아니라 가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산모도 지원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심 의원은 좋은 조례 하나가 나오려면 무엇보다 집행기관인 경남도와 사전 조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좋은 취지를 현실화하는 역할은 경남도 몫이기 때문이다. 이는 조례 제정에 적극적인 다른 의원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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