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팝은 억울하다. 벌레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그 이름을 입력하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떠오르는 글의 99%가 그들이 일베충이란 내용이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부연하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노는 사람들을 가리켜 일각에서 '일베충'이라 부른다. 맨 뒤의 '충'자는 '벌레 蟲', 매우 심한 욕이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 비하와 장애인 혐오 같은 반사회적 콘텐츠로 가득한 곳이다. 그렇기에 드나드는 사람들, 심지어 거기서 주로 쓰이는 단어나 표현만 사용해도 정상적인 사람으로 볼 수 없다며 벌레 취급을 하는 것이다.

크레용팝이 일베충이라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멤버 중 누군가 트위터에 '노무노무 멋졌다'란 표현을 썼는데 그게 일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란 거다. 둘째는 소속사 사장의 행태다. 한 열혈 팬이 크레용팝 멤버들을 민주화운동 탄압의 상징인 백골단으로 묘사한 뒤 '폭도진압돌'이란 이름을 붙여 그 이미지를 일베에 게시했고, 회원인 사장이 그에게 매우 고마운 홍보 활동이라며 치하했다는 거다.

하지만 그 논리는 매우 빈약하다. '피곤하노'같이 맨 끝에 '노'를 붙이는 말투를 일상적으로 쓰는 경상도 사람 모두를 일베 회원으로 몰아갈 수 없는 것처럼, '노무노무' 하나로 벌레 취급하는 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사장이 일베 회원이니 당연히 그들도 그렇다는 단정도 마찬가지다. 증명되지 않은 사실인 데다 설령 사장이 그렇다손 쳐도 그룹 멤버들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신곡 '빠빠빠'와 독특한 춤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크레용팝. /연합뉴스

사장이 한 열혈 팬과 나눈 대화록과 '파문' 직후 쓴 해명 글이 인터넷에 떠다닌다. 이를 보면 그가 일베를 어떻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이미 몇 번이나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그에게 일베는 그저 동시 접속 2만 명이라는, 게다가 일당백의 왕성한 활동력을 갖춘 이들이 상주하는 엄청난 홍보의 장이었을 뿐이다. 결국 그의 말대로 "방송 한 번 나가는 게 소원"이었던 걸그룹이 단번에 '대세'로 우뚝 섰다. 가장 큰 공은 '딱지' 붙여 키워준 일부 네티즌과 논란을 확대재생산하며 중계해 준 매체들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천박한 자본주의가 꽃핀 나라에서 자본의 논리가 통하지 않을 곳은 없다. 크레용팝 소속사 사장은 단지 그 천박함에 몸을 던지는 걸 주저하지 않았을 뿐이다. 진짜 문제는 말도 안 되는 함량미달의 노래가, 그것도 일본의 한 걸 그룹을 그대로 흉내 낸 짝퉁 중의 짝퉁이 마치 대단한 콘텐츠인 것처럼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함량미달의 일부 언론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세계시장 진출까지 운운하고 있다.

정리하면 크레용팝은 그 수준에 비해 너무 과한 관심을 받았다. 지나친 관심은 모두 일베 덕분이었다. 이제 선례가 생겼으니 일베를 무대로 활동하는 걸 주저하는 이들이 하나 둘 줄어들 것이다. 논란 속에 SNS에 그들 이름이 둥둥 떠다닐 테고, 단지 그 양을 근거로 빅데이터 운운하는 이들이 화제의 인물로 부각시킬 것이다. 보수 매체와 장기 집권을 꿈꾸는 자들은 그렇게 일베를 합법화하며 진보세력의 대항마로 키워가지 않을까. 크레용팝은 억울하다. 하나 그들보다 수십 억 배 더 억울한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제 머리 쥐어박아가며 창작에 골몰하다 결국 무관심에 지쳐 사라져 갈 진짜 음악인들이다. 관심 좀 제대로 쓰자.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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