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아들 이종민이 쓰는 부모님 이호곤·채순화 이야기

'친구 같은 부모님.' 딱 나와 우리 부모님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친구들이 보고는 부러워 할 정도로 똘똘 뭉치는 우리 가족! 나는 학교 때문에 창원에 있지만, 종종 서울 집에 가면 부모님과 도란도란 맥주 한 캔에 이런저런 고민과 일상을 이야기 하고는 한다. 그런데 내 여자 친구 이야기를 하던 중 문득 '부모님은 어떻게 만나서 어떤 연애를 하셨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아들 이종민(25·대학생)이 아버지 이호곤(54·자영업), 어머니 채순화(51·주부) 씨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과 오징어를 앞에 놓고서 말이다.

-아빠랑 엄마는 어떻게 만났어?

(아빠) "먼저 결론부터 말하면, 대구에 있을 때 집으로 가는 33번 버스에서 만났지. 친구가 입대한다고 대구 동성로에서 환송 파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는데, 얌전한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이 얼마나 큰지 내 눈 두 배는 되는 것 같았지. 그냥 뭐 한마디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그래서 이 여자구나 했지. 그래서 바로 옆으로 가서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지. 그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 집으로 갔는데 어찌나 계속 생각이 나던지…. 어쨌든 내 패기 덕분에 지금까지 잘살고 있지."

(엄마) "친구들과 모임 후 버스 타고 가는데 웬 ROTC 제복을 입은 좀 근사한 학생이 대시하길래 속으론 '괜찮구나' 하면서도 겉으론 아닌 척했었지. 다음날 다시 한번 보고 결정하려고 나간 게 결혼까지 가게 된 거야.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나가길 잘했구나 싶네. (웃음)"

여전한 미모를 자랑하는 엄마, 그리고 대장부 누나.

-역시 우리 엄마는 그때도 예뻤구나. 엄마는 아빠의 어떤 점을 보고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엄마) "지금은 많이 늙었지만 그때만 해도 부리부리 또릿한게 잘생겼었어. (웃음) 무엇보다 강하고 남자답기만 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눈물이 많고 여리더라, 드라마 보면서도 잘 울고. 또 하나는 도전 정신이 강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 같았는데 그건 엄마가 잘 본거지."

-아빠 젊을 때 사진 봤었는데 잘생겼었더라.

(아빠) "아빠도 한 인기 했었어."

(엄마) "인기는 모르겠지만 남자답게 생겼었지! 우리를 보고 다들 요즘 말로 훈남 훈녀 커플이라고 했었다니까!"

-그나저나 엄마·아빠 연애할 때에는 어떤 데이트를 했어?

(아빠) "우린 주로 많이 걸었지. 예쁜 여자와 데이트하는 것 자랑하려고. 다들 어찌나 부러워하던지…. 아빠 어깨가 하늘로 승천했었다."

(엄마) "이제 와서 말이지만 엄마는 발도 아픈데 계속 걸어 다닌 거지. 그래도 여자들은 가끔 예뻐 보이려고 높은 굽도 신고하는데, 너희 아빤 그걸 모르더라고. 그래도 그렇게 걸어 다니는 것도 좋았어. 그때는 한창 콩깍지 씌었을 때니까."

아빠와 함께한 기차 여행 중 '쿨~쿨~'

-서로 이런저런 모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결혼하고 나면 내가 모르던 상대 모습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게 있었어?

(아빠) "너희 엄마는 아빠에게 많이 실망했겠지만, 엄마는 나중에 변했다든지, 이전에 없었던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지. 참으로 한결같은 사람이야. 아빠를 계속 믿어주고 사랑해주니 매우 고맙지."

(엄마) "연애할 땐 아빠가 리더십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엔 그 리더십이 너무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돼서 조금 힘들었지. 연애할 때는 그냥 모든 게 다 좋았었거든. 연애와 결혼은 다르더라고. 결혼은 현실인 거지."

-누나랑 나를 키우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어? 지금만 봐도 누나랑 내 성격은 많이 다르잖아.

(아빠) "누나는 아빠를 닮아 성격이 좋게 말해 대장부야. 네가 봐도 그렇지 않니? 얼마나 대장놀이를 하는지 동네 애들을 많이 물고 들어와 엄마가 힘들었었지. 애 엄마들한테 사과한다고 말이다."

(엄마) "반면에 우리 종민이는 덤으로 큰 것 같은 느낌이었어. 너무 착했거든. 누나를 키우다가 너를 키우니 아기 천사 같았어. 순하고 울지도 않고."

-그럼 너무너무 좋았을 때는 언제야? 자랑스러웠던 적이나 감동했던 적?

(아빠) "일일이 다 말하라고 한다면 너희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말해주었을 때, 이름을 썼을 때, 처음 카네이션을 달아주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지."

(엄마) "처음 걸었을 때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를 보고 울컥했다니까. 그렇게 작은 아이들이 걸으려고 어찌나 안간힘을 쓰는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지. 처음으로 옹알대다가 말을 했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 나니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그 이후로 '엄마 엄마'를 입에 달고 사는 너희 때문에 아빠가 질투를 좀 했었지. '아빠'는 안 불러준다고 말이다."

-우리를 어떠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어? 음…. 말하자면 교육 방침 같은 거?

(아빠) "잘 될 때 겸손하고, 힘들 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저력 있는 딸·아들. 사회 한 구성원으로 봉사하는 것. 아빠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어. 너희가 잘 지켜줘서 고맙지."

(엄마) "언제나 목표와 자신감을 두고 너 자신을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네. 자존감이라는 건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거야. 자존감이 없으면 다른 그 누구도 사랑해줄 수 없어.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떠한 일을 할 수 있겠어. 자신을 사랑할 줄 알면 남도 사랑할 수 있단다. 엄마 바람 덕인지, 어떠한 일이든 도전해보고 부딪쳐보고,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생각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줘서 매우 고맙지."

-아빠·엄마 연애 얘기랑 우리 어릴 적 얘기 들으니까 너무 재밌다. 엄마·아빠는 오늘 어땠어? 이런 얘기 하기 쑥스럽기도 했을 텐데.

(아빠) "너희가 다 컸다는 생각이 드네. 같이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자기 앞가림도 잘하고 있고…. 뭐든 열심히 도전하는 너희가 자랑스럽다. 마지막으로 여보, 사랑해~"

(엄마) "재밌네. 다음에는 우리 딸·아들 연애사 좀 들어볼까?"

엄마·아빠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생각해보면 항상 부모님은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셨다. 언제 내가 궁금해 한 적도 없었던 것 같지만…. 대화라는 것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것만 같아 죄송하기도 하다. 몰랐던 부분도 알게된 엄마·아빠 이야기는 그 어떠한 드라마·책보다 재미있었다. 이제는 내 얘기가 아닌 서로의 대화를 많이 해야지.

'아빠! 엄마를 보고 첫눈에 반해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를 허락해줘서 고마워. 그 덕분에 누나와 내가 이렇게 있잖아. 사랑해~♥"

/이종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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