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게, 갑자기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말이야."

"우리가 지금 무슨 얘기 중이었지?"

"내 휴대전화 봤어? 분명히 챙겼는데."

대화중에 말문이 막히거나, 화제를 잊어버리거나 또는 물건을 둔 자리가 기억나지 않는 일이 부쩍 늘었다. 그래서 포스트잇이나 메모지에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애쓰는데, 아직 익숙지 않다.

학교 다닐 때 제법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 친구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도 잘 기억했다. 요즘은 고민이 될 정도로 기억력이 영 신통찮다.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증은 아니지만, 단어가 기억나지 않을 때나 대화 중 화제를 잊어버릴 때는 낭패가 아닐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기억력과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았다. 기억력 향상에 좋다는 음식도 메모하고 추천하는 책들도 찾아보았다.

연관 검색어를 찾아 들어가 사람들이 올린 건망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었는데 무척 공감이 갔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는 사람이 꽤 된다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기억력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20살이 넘으면 뇌세포는 1년에 0.2%씩 감소해서 70살이 되면 정보 검색능력이 10% 정도 둔화된다. 그러나 실제로 기억력 감퇴는 뇌세포가 대량으로 줄어들어서라기보다는 뇌신경의 전달 속도가 느려져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기억력은 주의력과 관련이 있어서, 주의력·집중력을 키우면 기억력도 좋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명랑하고 밝은 성격, 꾸준한 운동과 비타민·미네랄 보충…. 메모지에 기록하면서, 당장 내일부터 실천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찾아들어간 블로그에서 뜻밖의 글귀를 보게 되었다.

"좋은 기억력은 훌륭하지만, 망각하는 능력은 더 위대하다."(제임스 하버드)

이 아이러니한 글귀 앞에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곧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적고 다시 읽어보니, 앞서 얻었던 유용한 과학적 지식과 전문가들의 조언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모르는 게 약, 아는 게 병이라는 것을 살짝 바꿔보면 잊어버리는 게 약, 기억하는 게 병이 된다. 과거 기억 중에 나를 괴롭혔던 사건이나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현재'를 현재답게 살 수 있는 것도 망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나간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재'에도 '과거'로 살아간다면 삶이 얼마나 힘겹겠는가. 우리가 추억을 아름답게 반추할 수 있는 것도 망각이 체처럼 적절하게 걸러주기 때문일 것이다. 잊어버림. 그래서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심옥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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