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황숙자 김해시 장애인복지담당

사회적 약자를 돕고 돌보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많은 사람이 나서보지만 대부분 말로만 그치거나 몇 차례 해 보고 마는 단기성으로 끝나기 일쑤다.

남의 돌봄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장기간 지속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황숙자(48·사회복지직·사진) 김해시청 장애인복지담당. 그는 25년이 넘도록 사회적 빈자와 약자 층을 어루만지며 돌보고 있다. 싫증도 날 법도 한데 남을 돕는 일이 왠지 체질에 맞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외형상으로 섬세한 부분도 있지만 유난히 약자 층을 돌보는 근력이 발달해 체질상 타고난 봉사자인 느낌이 들었다. 그의 사회봉사 노정에는 남다른 데가 많다. 공직 입문 이후 10년간 읍·면·동 최일선에서 아동과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빈자 층을 돌봤다.

당시에는 현금지급이 아닌 현물을 지급하던 시절이라 오토바이를 직접 타고 쌀과 지원품 등을 배달했다. 가정마다 직접 찾아간 탓에 누구보다 이들의 사정을 꿰뚫었다. 홀로 노인들에겐 풍성하지는 않지만 직접 생일상도 차려 올려 지금까지 인연의 끈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현장 경험들이 현재 사회복지업무를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내 돈 아닌 나랏돈이라고 해서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공직자는 수급자 발굴에서부터 선정하는 데까지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했다.

   

지원금이 수급자들에게 한번 나가게 되면 그 이후는 중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복지업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는 공직에 들어오기 전 민간복지관에서 일을 했다. 이곳에서 정부지원이 꼭 필요한 빈자 층인데도 수급자로서 대상조차 지정이 안 되는 것을 자주 경험했다. 민간복지관이라 수급자 대상지정 권한이 없어서였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보고 사회복지 공무원을 지원했다. 사회복지의 외연을 민간에서 공직으로 넓힌 덕택에 공직생활을 통해 수많은 '복지씨앗'을 뿌리고 결실을 거뒀다.

자원봉사업무를 보면서 공무원자원봉사단을 결성했다. 민간자원봉사단체가 있는데 명색이 공무원자원봉사단이 없어서야 말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도내 처음으로 자원봉사나눔축제와 박람회도 개최했다. 남을 돕는 데 있어 몸으로 때우는 궂은 봉사 일은 다 해치웠다. 이런 공로로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2007년부터는 퇴근 이후 김해야학교 교사로 나섰다.

"어차피 남을 돌보는 일을 주업으로 삼겠다면 좀 더 진화된 봉사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른바 '재능봉사자'가 된 것이다. 그는 7년째 김해야학에서 늦깎이 만학도들의 검정고시 합격을 위해 지식 봉사를 하고 있다. 낮엔 공직에서, 밤엔 야학에서 약자 층을 돌보면서 사회복지업무를 직접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한때는 섬마을 선생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꿈을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야학교사로서 누군가를 계속 도울 수 있어 다행스럽다"며 날아간 청춘의 꿈을 위로했다.

이유는 야학 출신 제자들 때문이다. 제자 중에는 그의 영향으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생겼다. 그가 강단과 강호에서 체득한 사회복지 봉사 경험을 전수한 덕택이다.

그는 야학봉사 공로로 지난 6월에는 국제로타리 3720지구 회원들 추천으로 민원봉사대상(교육과 행정)을 받았다. 상금 50만 원을 받아 머뭇거림 없이 한 부모 장애인 자녀의 장학금으로 내놨다.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김해지역자활센터와 생명나눔재단, 지역아동센터 등 5개 시설에 매월 후원금도 내고 있다. 이런 시설에선 정기적인 후원자가 필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돕는 일에 때론 몸으로, 때론 금전으로, 때론 재능으로 거침없이 내던지는 이른바 그가 그를 생각하지 않는 '공아(空我)'의 봉사인이다.

사회복지공무원은 엄격히 따지면 시민세금을 받을 수혜자들을 선정하고, 세금을 제대로 분배 관리 감독하는 사회복지업무의 행정적인 일을 하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와 무관한 듯 빈자들을 위한 영원한 봉사자로서 현역에 남고 싶어 해 타고난 봉사자 체질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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