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남 2녀 중 아홉 번째. 내 남편은 구남매의 막내이다. 구남매, 이 말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가령 많은 동생을 위해 군대에서 받은 얼마 안 되는 월급마저 집으로 부쳐 동생들 학용품 값으로 쓰게 한 큰 형님의 사연. 연로하신 부모님의 형편에 달랑 어머님의 금비녀 하나 받고 시집온 막내며느리인 나의 설움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난한 말단 역무원의 월급으로 아홉 아이를 키우신 시어머님의 헌신과 노고야말로 가장 극적인 역사라 하겠다. 시어머님의 한 달은 빚으로 시작해 빚으로 막을 내렸다 한다. 자식들 육성회비, 학용품 값이 필요할 때마다 이웃집에 돈을 꾸어야 했고, 아버님의 월급날이 되면 한 달간 꾼 돈과 외상값 갚고 나면 한 푼도 안 남더라는 이야기는 생전 어머님이 가끔 무용담처럼 들려주던 것이다. 내가 큰 아이를 가져 임신 4개월이 되었을 때 시어머님은 돌아가셨다. 어머님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가족은 각기 작은 규모의 가족으로 분화되었다.

흔히 가족이 많으면 다복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은 때로는 서로를 위해 희생을 요구해야 했고 더러는 뜻하지 않게 소외감을 맛보게도 된다. 무엇보다 각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게 되면 여기에 충실하며 살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댁 역시 결혼 후에는 1년에 한두 번 얼굴 보기도 힘든 가족이 생겨났다.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소원해지고 나중에는 이웃보다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조카가 아이를 낳아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꾀를 냈다.

아무리 격조해졌다 해도 작은 구심점이라도 있으면 급속한 결집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가족 아닌가. 발달한 기술과 통신의 힘을 빌려 스마트폰에 가족밴드 '아홉 남매 행복 일기'를 개설한 것이다. 개설 후 일일이 초대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이 없는 가족에게는 전화로 독려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소식을 공유하며 댓글을 달았다. 실시간으로 서로의 소식을 알아보게 된 가족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삼촌, 사촌, 오촌, 육촌끼리 소식을 주고받느라 나의 전화기는 밤낮없이 삑삑 댄다. 이 첨단의 기술로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사촌과 오촌, 육촌을 되찾은 기쁨을 한껏 만끽하고 있다.

조카가 밴드 개설해 줘서 고맙다고 '막내 숙모 최고'라고 치켜세워 주어 한껏 내 주가가 올랐다. 밴드 멤버가 스물일곱 명을 돌파한 오늘 아침엔 남편이 가족 화목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며 죽은 뒤 무덤에 비석 하나 세워야 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품이 다정한 남편은 가족들과 소원해진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이런 소통의 장이 마련되니 누구보다 열심이다. 시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흐뭇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효도한 마음이다.

누구나 소통이 필요하다. 더구나 그 대상이 가족 아닌가. 아마도 친척이라는 말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하지 않을까?

   

'아홉 남매 행복일기' 밴드에 나날이 새롭고 기쁜 소식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더러 아프고 슬픈 일도 있을 것이다. 가족끼리 기쁜 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가슴 아픈 일은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며 산다면 세상사 행복은 몇 배쯤 더 커지겠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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