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전국연극제 대통령상' 거제 극단 예도 서울서 제작

지난해 제30회 경남연극제 대상과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휩쓴 거제 극단 예도(대표 최태황)의 <선녀씨 이야기>(작·연출 이삼우)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에서 한 달(8월 16일~9월 15일) 동안 공연된다.

경남연극제 대상작이 경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장기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기획사의 러브콜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창작 인프라가 열악한 경남 연극계에서 <선녀씨 이야기>는 전국연극제 대통령상과 희곡상,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연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서울 공연은 작품의 대중성과 상품성까지 사로잡을 새로운 기회다. 연극의 중심지인 서울은 그간 전국연극제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인 연극제를 치러왔다. <선녀씨 이야기>는 경남을 넘어 서울 연극계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극단 예도의 서울 진출 의미와 이후 발전 전망 등을 알아봤다.

◇진부한 소재를 참신하게 요리 = <선녀씨 이야기>는 '어머니'를 소재로 한다. 다소 진부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연극을 알리는 데 이만큼 좋은 소재가 어디 있나 싶지만 관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이삼우 연출가는 지난 1일 서울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설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어머니의 이야기는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좀 더 특별하고 평범하지 않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서울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에서 연극 <선녀씨 이야기> 제작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맨 왼쪽부터 최민선 (주)PS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삼우 연출가, 배우 한갑수, 이재은, 임호, 고수희. /김민지 기자

어머니(선녀)를 2인 1역으로 설정하고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구성 등 비사실주의 판타지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감동뿐만 아니라 '웃음과 재미'에도 초점을 맞춰 식상함을 깨고자 했다.

젊은 선녀를 맡은 배우 이재은 씨는 대본을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종우 역할을 맡은 배우 임호 씨도 "연극 연습할 때마다 눈물바다가 된다"고 전했다. 극단 예도에 러브콜을 보낸 기획사 (주)PS엔터테인먼트 대표 최민선 씨도 "작품을 보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고 토로했다.

<선녀씨 이야기> 제작발표 기자회견에서 선녀 역을 맡은 배우 이재은이 극 중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민선 대표는 과거 김해 극단 이루마에서 단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으며 15년 전부터 이삼우 연출가와 인연을 이어왔다. 최 대표는 "신의와 의리 때문은 아니다. 기획자, 제작자로서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지난 4월 공연을 처음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그때 느낀 감동을 더 많은 관객에게 전해드리고 싶었다"고 서울 공연 배경을 밝혔다.

◇지역 특색 그대로 살려서 = 기자회견 당일 5분 정도 배우 이재은 씨의 인형극 시연이 있었다. 이 씨는 나직하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엄마는 우리 종우랑 천천히 행복하게 살끼다. 우리 종우 이제 아프면 안된데이"라고 대사를 읊었다.

거제 출신인 이삼우 연출가와 어머니 사이의 일화에서 출발한 연극인 만큼 무뚝뚝하고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서울 공연에서도 그대로 표현된다. 경상도 사투리를 서울 배우들이 잘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해 이 연출가는 "한 분(이재은) 빼고는 모두 경상권 출신 연기자다. 사투리 연기가 다소 어색할 순 있지만 치열하게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부터 줄곧 자신의 작품은 무조건 사투리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예전에는 지역 출신 배우가 사투리를 못 고치면 홀대당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고 있다. 사투리 연극이 뜨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 공연된 <옹점이>, <878m의 봄>, <전명출 평전> 등이 모두 맛깔스러운 사투리 연기로 인기를 끌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의 연극이 공연되는 서울에서 '사투리'는 나름의 독자적 영역을 인정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통영 극단 벅수골의 배우 박승규(전 경남연극협회 회장) 씨는 "사투리 자체가 연극성을 갖고 있다"면서 "최근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사투리를 쓰는 개그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도 사투리로 표현된 연극이 많이 눈에 띄더라. 지역에서 만든 연극을 서울에서 공연한다고 굳이 표준어 대사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극단 예도의 <선녀씨 이야기>공연 모습.

◇경남 연극계에 희망을 쏘다 = 전국연극제는 매년 서울을 제외한 전국 15개 광역시도 대표 극단이 경연하는 연극 축제다.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받은 작품은 이듬해 서울연극제에서 하루 이틀 정도 '단발성'으로 공연되곤 했다. 대부분 자기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공연된다.

극단 자체 기획만으로 서울 진출을 노렸던 경남 연극계에 이번 예도의 도전과 성과는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의미가 있다. 문종근 마산 극단 객석과 무대 대표는 "지역을 벗어나 서울에서 공연하려면 기획사(제작사)의 지원을 받거나 자체 기획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자체 기획은 재정 확보가 어려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획사와 함께한다면 재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도의 사례는 작품의 스토리텔링이 튼튼하다면 서울 등 어디서든지 공연할 수 있고, 기획사의 러브콜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천영훈 경남연극협회 회장은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받은 연극이 '경남'이라는 제한된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도 장기 공연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면서 "연극계 후배들이 좀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녀씨 이야기>는

-어머니의 삶에 비친 현대 가족사회의 이면

<선녀씨 이야기>는 직접 극작과 연출을 한 이삼우 씨의 자전적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평생 한 사람의 아내, 3남매의 어머니로만 살다가 끝내 별이 되지 못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중심축이다.

집을 나간 지 15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 장례식장을 찾은 아들 종우. 데뷔 이후 처음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 임호와 최고 흥행 배우 진선규가 종우 역을 맡았다. 어머니 선녀씨는 배우 고수희와 이재은이, 아버지 역은 한갑수가 캐스팅됐다.

연극은 어머니 영정사진 앞에 선 아들 종우의 시선으로 선녀씨의 삶을 바라본다. 이를 통해 현대 가족 사회의 이면을 보여준다. 현재와 과거 인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뒤섞이는 연출 기법과 꾸밈없고 투박하게 그려낸 인물이 특징이다.

8월 16일부터 9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센터K. 화·목·금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3·8시, 토·일·공휴일 오후 3·7시. VIP석 5만 원, R석 4만 원. 문의 159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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