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68) 학교와 향교에 왜 은행나무를 심었을까

학교 화단에 왜 향나무로 도배를 해 놓았을까? 학교에는 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꼭 심을까? 교장 선생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소나무를 심으려고 하는걸까? 학교에 심는 나무를 찾아 찾아 들어가면 조선시대 향교와 서원을 만난다. 향교와 서원에는 왜 나무를 꼭 정해진 그 곳에 심어야 했을까? 향교와 서원은 다시 타임머신을 타고 공자와 만난다.

◇은행나무=행단(杏壇)

공자께서 강의를 하시는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한다. 한자로 은행나무 행(杏)자보다 살구나무 행(杏)자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은행나무는 공자의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향교와 서원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학교에도 은행나무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은행나무와 살구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이선 선생이 쓴 <우리와 함께 살아 온 나무와 꽃>이란 책에 아주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은행나무 VS 살구나무

공자께서 가르치던 곳에 있던 나무가 살구나무가 맞을까? 아니면 은행나무가 맞을까? 조선시대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정약용의 <아언각비>를 종합해보면 '행(杏)은 홍행(紅杏)이다'라는 구절과 '단 위의 행화는 붉어 반이나 떨어졌네'라는 구절이 있다. 붉은 꽃이 피는 살구나무가 공자의 나무가 맞다고 풀이했다. 현대인의 붉은 꽃은 영어 RED의 개념이지만 옛날 붉은 색은 지금의 연분홍도 붉은색이었다.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는 우리나라 붉은 꽃의 대명사이다.

살구꽃의 연분홍 색은 복숭아꽃 진달래 꽃과 함께 봄날 춘정(春情)을 상징하는 꽃이다. 요즘으로 치면 19금 야동에 나오는 꽃이다. 야동이 어울리는 연분홍 살구꽃은 공자의 나무로 부적절했을 것이다.

중국 한자에서도 은행나무를 오리발을 닮았다고 압각수(鴨脚樹)라고 부르다가 송나라 때 처음으로 은행(銀杏)이란 단어가 나왔다고 한다. 살구나무는 은행나무보다 키도 작고 오래 살지 못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는 살구나무 대신 은행나무가 공자님 나무로 들어와서 공자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대표 나무가 되었다.

요즘엔 맛있는 과일에 밀려 살구가 사라지고 있다. 살구꽃이 요염한 꽃이란 걸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수수한 꽃이 되어 버렸다.

◇측백나무는 공자의 묘지 주변

측백(側柏)나무는 불로장생의 나무, 신선의 나무, 성인의 나무다. 측백나무 잎이 앞뒤 모양과 색이 비슷해서 겉과 속이 서로 다르지 않은 군자의 나무라고 한다. 왕릉에는 소나무를 심고 왕족과 성인의 묘에는 측백나무를 심는다고 한다. 공자 묘에도 오래된 측백나무가 가득 심어져 있다고 한다.

겸재 정선의 <행단고슬도>. 공자가 행단에 모인 제자들에게 강학을 하는 풍경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향나무

향나무는 제사를 모시던 곳에 심었다. 향이 부정을 없애고 정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잡귀 잡신을 내쫓는 벽사의 힘이 있는 나무다. 향을 피우면 그 향을 맡고 신이 찾아오는 것이다. 향을 피우는 것은 신이 강림하도록 하는 것이다. 향나무는 서원이나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에 심었다.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던 향나무는 일제강점기 이후 가이즈까향나무로 대체되어 학교마다 똑같은 향나무가 점령해 버렸다.

◇회화나무

당나라 때 회화나무가 꽃을 피우는 음력 7월에 과거를 보았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중국에서 수입된 귀한 나무다. 회화나무는 지금도 선비나무 또는 학자수(學者樹)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3정승을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회화나무였다. 영어로 SCHOLA TREE라고 하는 것이 우연은 아닌 듯 하다.

◇느티나무 VS 회화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접받는 나무 중 하나이다. 동네나무 정자나무로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느티나무가 있다. 우리 민족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갓난아기 때부터 놀다가 늙어 노인이 되어서도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었다.

향교와 서원에는 회화나무를 심는 것이 원칙이나 회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회화나무를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번식을 시켜야 하는데 그 옛날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한자로 회화나무는 괴(槐)자를 쓴다. 회화나무를 구하기 어려운 조선에서 위엄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느티나무를 괴목(槐木)이라 부르며 같은 의미로 심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자생하지 않는 회화나무를 대신할 나무로 신성한 느티나무가 자연스럽게 향교와 서원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배롱나무

한여름 백일동안 핀다는 배롱나무는 깨끗한 나무 껍질은 깨끗한 청결과 고요함을 상징한다. 정자와 향교 묘지에 배롱나무가 눈에 띄는 것은 선비들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배롱나무는 떠나간 벗을 그리워하는 나무라고 한다. 누구를 그렇게 그리워해서 심었을까? 정자 옆에도 향교에도 묘지에도 배롱나무가 참 많다.

◇그 외 나무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에 선생이 좋아하던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를 심었다고 한다.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꽃과 나무를 보며 삶을 가꾸어 갔을 것이다. 곧은 절개와 지조를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선비들에게 소나무는 최고의 나무였다. 은행나무는 강의를 하는 곳에 제일 많고 공자께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향나무가 제일 많다. 소나무는 울타리 밖으로 제일 많은 나무다. 매화나무는 선비의 곧은 지조를 상징한다. 신주인 위패를 만드는 밤나무를 향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곳에서 심기도 했다고 한다.

◇대의와 명분의 나무

대의와 명분의 나라 조선에서 향교와 서원에 나무 한 그루는 물론이고 풀 한 포기 꽃 하나도 의미를 부여하며 정해진 그 자리에 심었다. 지조와 절개를 목숨처럼 여긴 선비들에게 꽃 한송이 나무 한 그루도 그들의 삶이고 철학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학교에는 일제 잔재와 미국과 기독교 영향까지 합쳐져 복잡한 학교 나무와 꽃을 심게 되었지만 그 중심 뼈대는 여전히 향교와 서원의 나무를 따라 심고 있다.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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