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충남 태안 해병대 캠프 참사가 지난 24일 희생자 영결식을 갖고 관련 책임자를 구속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어이없는 죽음은 언제나 비극이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더 비극적으로 만드는 건 실상 '죽음 이후'일 때가 많다.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안이나 의지는 뒷전이고 책임 회피, 보상 문제 등이 앞세워지는 경우가 그렇다. 당연히 비극을 공유하고 책임지는 차원에서 적절한 보상은 뒤따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마치 '죽음값'만 해결되면 모든 사태는 끝난 것인 양, 모든 걸 잊고 넘어가자는 듯한 분위기는 아무리 봐도 죽은 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태안 사고 유가족들은 그런 점에서 많이 달랐다. 지난 20일 발표한 '유족 입장'은 되돌릴 수 없는 허망한 죽음을 최대한 의미 있게 만들려는 산 자들의 고뇌와 진심이 느껴졌다. 보상 문제는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죽은 아이들에 대한 사죄와 함께 관계 당국의 책임 있는 태도·대책, 문제의 해병대 캠프와 유사한 모든 캠프 운영 중단, 관련자 엄벌 등 오직 비극의 재발 방지만을 강조했다. "아이들은 꽃다운 나이에 인권이 유린된 상태에서 죽음을 당했다"며 유족들만의 외롭고 힘든 싸움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죽음은 어느새 모든 아이가 인간답게 교육받고 보호받을 수 있는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깊고 긴 울림이 됐다.

지난 20일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유가족들이 빈소 앞에서 '유족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누구나 죽음을 돈 또는 어떤 물질과 맞바꿔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위가 그렇다는 것일 뿐 현실은 딴판이라고 보는 게 맞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보상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이 아니다. '싸고 빠르고 편리하게' 주검을 '처리'해주는 상조회사의 범람, 금전을 둘러싼 잇단 자살과 살인, '나 홀로 죽음'의 속출 등은 죽음이 경제 논리나 편의주의에 지배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들이다.

죽음에 대한 홀대는 우리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계 원로인 정진홍 울산대 교수는 "죽음이 경제 논리로 설명되는 일련의 사태는 그대로 생명도 오물처럼 처리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주체들이 경제 논리에 의해 수단화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실제로 삶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편의주의의 범람을 좇아 일어나는 죽음의 유실은 그대로 생명의 유실을 현실화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편의주의적인 죽음 처리는 삶을 편의주의적으로 처리하는 데 이른다. 역도 참이다. 삶을 편의주의적으로 살지 않았다면 죽음도 그렇게 다루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2년 6개월 사이 모두 7건의 변사 사건이 일어난 창원의 한 임대아파트 이야기는 죽음과 삶의 적나라하고 무책임한 사회적 방치를 그대로 보여줬다. 대부분 노년층, 알코올 중독자, 정신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인 이들 중 다수가 혼자서 고통스럽게 살아오다 쇼크사나 뇌진탕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게는 2~3일, 길게는 보름 만에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사회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들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면, 함께 살아가야 할 존엄으로 대했다면 이런 처참한 죽음의 풍경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죽은 뒤의 관심과 대책은 예의 늦다. 인간다운 삶의 보장만이 인간다운 죽음을, 인간다운 죽음만이 인간다운 삶을 기약할 수 있다. 태안 사고 유족들이 아이들의 비극적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배우고 깨닫길 바라는 진실도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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