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은 장마 때문에 난리라지만 여기는 불볕 더위 때문에 난리다.

언제 비님이 오셨나 싶은 게 예전엔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비 소식을 그리워하며 간사스러운 마음으로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거리에는 경쟁적으로 짧아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더위에 시위하듯이 오간다. 허벅지까지 올라온 짧은 반바지와 민소매 차림의 옷을 보면 노출이니 뭐니 따위의 말보다는 그저 부럽기만 하다. 정말 부!럽!다!

한창 멋부릴 20대에는 통통한 몸매가 부끄러워 짧은 옷을 입지 못했는데 고맙게도 나이가 좀 들면서 살이 빠져 좋아라 했더니 이번엔 그놈의 건선이라는 피부병이 찾아왔다. 망할 놈의 건선. 어지간하면 더운 날씨에 종아리라도 내놓고 다니련만 하필이면 종아리 아래쪽으로만 흉물스럽게 퍼져 올라오니, 내 팔자에 정녕 짧은 치마는 없으려나 보다 푸념하며 더운 여름 내내 바닥을 쓸고 다니는 긴 치마만 입고 다니다가, 우연히 두엄 효소욕이라는 민간요법을 알게 되었다.

쌀겨를 미생물로 발효시켜 그 발효열로 찜질하는 방법인데 60도 이상의 발효 두엄에 15분 동안 몸을 묻어 두고 있어야 한다. 뜨거운 것도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몸을 꼼지락거리면 발효열이 더 올라가 땀이 흘러서 얼굴이 간질거려도 꼼짝 할 수가 없다. 물론 친절한 사장님께서 땀이 흐를 때마다 수건으로 닦아 주긴 하지만 더운 두엄 더미 속에서 온몸이 뜨거워지며 힘들어지면 그 친절한 손을 깨물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예민해진다. 솔직히 2년 가까이 양방, 한방으로 치료하느라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고 지쳤던 터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찾아간 곳이었지만, 힘들어서 포기할까도 싶었는데 그러던 중 뜻밖에 동지를 만나게 되었다.

프로 배드민턴 선수라던 26살의 예쁜 아가씨는 한눈에 보아도 나보다 훨씬 상태가 좋지 않았다. 건선을 앓은 지 10년이 넘었다며 이 곳에서 치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는 그는 온 몸에 심지어 얼굴까지 건선이 올라와 선수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었다. 주 2회를 작정하고 다니면서도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왜 차도가 없냐며 푸념하던 내가 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찜질을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부터였다.

얼굴을 다 드러내 놓아도 힘들어서 10분만 지나면 꺼내달라고 하는 나와 달리 그는 눈, 코, 입만 제외한 모든 부분을 다 두엄에 파묻고서는 거의 매일을 눈물을 흘리며 20분가량을 참아낸다고 했다. 말이 20분이지 두엄 속에 파묻혀 있으면 1분이 1시간 같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어린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자신과 싸우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짧은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유치한 바람으로 빨리 차도가 없다며 툴툴거리던 나는 그 간절함과 힘겨운 싸움 앞에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로부터 2~3주가 지났을까? 힘들면 빠지고 생각나면 가던 불성실한 나와 달리 그의 건선은 정직하게 쏙 들어가서 믿을 수 없을 만큼 깨끗해져 있었다. 이제 비키니도 자신 있게 입을 수 있다며 활짝 웃는 어리고 예쁜 그를 보며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 주었다. 여전히 나의 건선은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않지만 그건 나의 노력과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무슨 일이든 정말 간절하고 절박하다면, 그리고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가 아니라 진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그 고마운 깨달음을 준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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