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주말] (78) 창원 진해구 웅동 대장동 계곡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디로 향한들, 모든 것을 바싹 말려버리겠다는 듯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피하기는 역부족이다. 작열하는 태양에 맞서 바다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겠다. 차 속에서 오랜 시간 버텨야 하는 장거리 계획도 슬며시 접어두게 된다.

이럴 때는 '나가면 고생'이란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굳이 피서를 가야 한다면 적당한 그늘과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 정도가 아닐까? 하고 고민하던 차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은 페이스북 '창원시 공식페이지'에 올라온 '먼 곳으로 가지 않더라도 알차게 피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문구.

대장동 계곡 유원지(창원시 진해구 대장동 60-2번지)다.

대장마을은 산줄기에서 3정승 8판서가 태어날 명당이 있다는 풍수설에 기인한 팔판산(798.4m)과 산 아래 바위굴에 암자가 있었다고 해 명명된 굴암산(662m)을 병풍으로 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서둘러야 한다. 계곡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날씨니 평소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계곡으로 향했다. '대장 계곡'이란 푯말을 따라가다 보면 최근 새롭게 만들었다는 공영주차장(391㎡)이 눈에 들어온다.

차를 주차하고 10여 분을 걸어가면 어디선가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물레방아와 신록이 어우러진 시원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수차를 이용해 방앗간에서 곡식을 빻고, 전력을 생산해 인근 대다벽(죽벽) 마을과 성흥사에 전깃불을 밝혔다는 '대장마을 전통 물레방앗간'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느리게 수차가 돌아가고 그 아래로 조그마한 연못과 다리, 그리고 각종 야생화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또 몇 개의 평상형 데크와 장승, 도랑까지 쉴 거리와 볼거리가 마련돼 있어 매미 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잠시 쉬어가기 좋다.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어디선가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점점 커진다.

계곡의 맑고 풍부한 물은 강렬한 햇볕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깨끗한 물살을 뽐내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여느 때 같았다면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물속에 발조차 담그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 흐르는 땀과 차오르는 숨에 이리저리 잴 것도 없이 발부터 물에 담갔다.

나무 사이로 아른아른 반짝이는 햇살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맑아 보이는 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수심도 깊지 않은데다 평평한 돌이 물 속으로 펼쳐져 있다. 이리저리 뻗어 곳곳에 만들어진 계곡은 아이들이 놀기에 안성맞춤이다. 다슬기가 바위틈을 기어다니고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아이들을 유혹한다.

   

튜브와 뜰채를 들고 이미 계곡물 속으로 몸을 맡겨버린 아이를 바라보며 돗자리를 폈다. 나무 그늘이 제대로 펼쳐져 있어 굳이 그늘막이나 텐트는 필요가 없다. 야영과 취사는 금지돼 있다.

다리를 쭉 뻗고 손으로 바닥을 누르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파란 하늘과 짙푸른 녹음 그리고 그 아래, 돌 위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있자니 혹독하게 데워졌던 도심의 공기를 잠시 잊게 된다.

강렬한 유혹이다. 계곡 밖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물 반 사람 반이 될 조짐이다.

곧 다시 오겠다는 확답을 듣고서야 아이는 2시간 남짓 흠뻑 빠져 있던 계곡 속에서 나올 채비를 한다.

계곡 위쪽에는 성흥사가 자리하고 있다. 성흥사는 신라 흥덕왕 8년에 무염 국사가 세운 절이다. 흥덕왕 초년에 웅동 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기념으로 왕이 무염에게 재물과 전답을 시주하여 무염이 구천동에 터를 골라 지었다.

처음 세울 당시에는 500여 명이 머물렀던 대사찰이었으나 건립 276년 만에 화재를 입어 대장리로 옮겨 지었다. 성흥사 대웅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돼 있다. 물놀이를 즐기고 한 번쯤 들러 보기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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