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연예인은 불쌍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각종 '설화 혹은 필화 파동'을 보며 든 생각이다.

어떤 여성 연예인은 자신보다 100만 원이라도 더 버는 남자라야 존경심이 생긴다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이 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별 셋' 그룹의 총수라는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존경의 기준이 재물인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거니와 비단 그녀만의 취향도 아닐진대 유독 비난받은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더구나 그녀는 자신이 '속물'이라는 전제 하에 그런 발언을 했다. 너무 솔직했던 게 죄라면 죄였을까.

하루 종일 그 이름이 인터넷을 떠도는 바람에 처음 존재를 알게 된 한 뮤지컬 배우는 자신의 SNS에 공연 후 의례적으로 하는 팬 사인회가 너무 피곤해 하기 싫다는 글을 썼다가 공적이 됐다. 이후 사과하고 캐스팅에서 빠졌다. "'팬 사인회 하기 싫다' 발언의 주인공 누구인가?"란 기사가 넘쳐난 데서 알 수 있듯 다들 이름도 잘 모르는 연예인이었다. 감히 그런 주제에 배부른 듯 자신의 피곤함을 만방에 과시한 죄, 기자 눈에 SNS 글이 들어 온 죄였다.

지난 17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방송인 안선영이 "나보다 100만 원이라도 더 벌지 않으면 남자로 안 보인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화면캡처

그뿐인가. 또 누군가는 팬 미팅 자리에서 무표정했단 이유로 난도질을 당했다. 그 자리에 참석해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는 누군가의 비난도 아니었다. 그저 인터넷에 퍼진 화면 속 표정에 다들 분개했다. 단지 예의 없는 연예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생각, 자신과 달리 화려하게 살면서 투정이나 부린다는 시기심, 그리고 그런 자세로 일해도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사실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을 뿐이다.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십거리인 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한데 그 도가 지나치니 문제고, 그들에게만 가혹하니 문제인 거다. 난무하는 황색 언론들은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 클릭 수가 곧 광고 매출인지라 매일 일정 개수 이상의 기사를 생산해야만 한다. 그것도 '낚시질'이 잘 되는 자극적인 제목이어야 하며, 누구나 쉽게 흥분하는 '증오'의 정서에 기대면 최선이다. 그러니 게시판에 올라 온 수천 개의 글 가운데 고작 대여섯 개가 제기한 문제도 '논란'이 되고, '파문'이 되며, 이내 걷잡을 수 없는 '일파만파'가 된다.

물론 논란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자들 그리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도 논리는 있다. 연예인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공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유명인'에 불과하며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일 뿐이다. 실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일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공인'들은 따로 있는데 그들의 막말과 일탈엔 한없이 관대한 반면, 미디어에 '슈퍼 을' 먹잇감인 연예인들을 공인 취급하며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혹하게 검증하는 건 암만 봐도 비상식적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간혹 의미 있는 사회적 발언을 한 연예인을 가리켜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그 말은 대체로 나머지 연예인들은 '개념'이 없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공인 의식에 준하는 자세와 태도를 요구하는 게 과연 정상일까? 단언컨대 지난 몇 달간 진정한 '귀태' 극우세력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의 압승을 기원한 이 나라 외교부 차관의 발언보다 더한 막말은 없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연예인 모두 백배 사죄했던 데 반해 그에겐 아무 일도 없었다.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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