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딸 전은경이 쓰는 엄마 변갑연 이야기

평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엄마와 친한 친구처럼 마음을 나누는 사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내게 속상한 마음을 위로받는 따뜻한 품,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현명한 선택에 도움을 구하는 조언자, 늘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든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무조건적인 내 편이다. 각별하지 않은 엄마와 딸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내게 엄마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코끝 찡해지게 하고, 또 가슴 한쪽을 짠하게 한다.

결혼을 앞둔 요즘 더욱 엄마라는 존재가 더 애틋하게 느껴진다. 엄마 또한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시긴 마찬가지일 것이고…. 엄마와 소통·나눔을 위해 단둘이 힐링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엄마와 처음 함께하는 단둘만의 여행…. 왜 진작 나는 엄마와 좋은 곳을 함께 보러 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깊은 추억을 만들지 못했을까 후회스러울 정도로 가슴 따뜻한 여행이 되었다. 여행 첫날밤 서로 이부자리를 보살피고 나란히 누웠다. 딸 전은경(32)이 엄마 변갑연(61) 씨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엄마는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뭐인 것 같아?

"나는 우선 우리 신랑을 만난 게 제일 잘한 일이지. 그 사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결같아. 큰 감동도 재미도 없는 사람이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야. 아빠가 하도 엄마 좋다고 따라다니니깐 엄마가 그냥 아빠랑 살아주는 거지~ 라고 잘난척했지만 사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너희 아빠랑 살고 싶어. 호호."

-예비사위에게 바라는 조건이나 결혼생활이 있어?

"엄마는 바라는 거 없어.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지금 당장 직장이 번듯하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어.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가정을 지키고 내 사람들을 지키려면 우리 딸과 예비사위, 둘 믿음이 가장 중요해. 엄마는 우리 딸이 그런 현명한 결혼생활을 해 나갈 거라 의심치 않아. 물론 우리 딸만큼이나 우리 듬직한 예비사위도 믿어."

-엄마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위탁모 일을 오래 했잖아. 위탁모 생활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

"글쎄, 그러고 보니 벌써 위탁모 일을 한 지 17년이 넘었네. 엄마 손을 거쳐 간 아기들은 대략 500명은 되겠다. 외국에 입양 가서 지금까지도 편지를 보내오는 우리 철용이는 벌써 대학생이 되었지. 너희 아빠가 늘 입버릇처럼 '늙으면 보육원 원장이 되어야지'라고 할 만큼 아기들을 무척 좋아했어. 그렇게 아기를 좋아했는데, 막상 우리 부부에게 10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 않더라고. 그 당시 입양이란 걸 알았으면 우리 부부는 입양했을지도 몰라. 아기 없는 부부 집인 걸 알고 업둥이가 들어오기도 했었거든. 결혼 10년 만에 우리 딸을 낳고 집안 사정 때문에 맞벌이를 나갔어. 마침 위탁모활동을 하고 계신 교회 집사님 댁을 방문했다가 우리 아이들도 내가 돌보고 어린 생명에 잠시나마 엄마가 되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

입양 대기 아동과 부모님.

-아기 보는 일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을 때는 없었어?

"왜 없었겠니, 우리 아이들 데리고 나들이도 가고 싶고 몸도 아주 힘들어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 그런데 너희도 경험했잖아. 아기가 집에 없는 날에도 우리 가족들에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웃음). '우유 먹을 시간이야'라며 빈방으로 달려가곤 했었잖아. 몸은 힘들지만 아기들을 보면 근심이 없어져. 물론 아기라는 존재 덕분에 우리 가족이 더 집안으로 모이게 되었고, 아빠와도 항상 신혼처럼 지낼 수 있었어. 비록 지금은 허리가 많이 안 좋아서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아기들을 돌볼 수는 없지만 항상 아기라는 존재는 그리워. 우리 딸이 빨리 예쁜 아기 안겨주면 좋겠다."

-위탁모로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어?

"2008년도였지. 홀트에서는 15년 이상 위탁모 활동을 하면 연수를 보내주거든. 엄마가 키웠던 민우가 미국 입양 결정이 났었는데, 연수일정이랑 맞아 직접 민우를 안고 해외입양 에스코트를 갔지. 민우가 무사히 해외입양 가는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했고 양부모님을 직접 뵐 수 있어 더욱 안심됐지. 연수 9박 10일 동안 보스턴·시애틀·시카고 등 엄마가 키워 해외입양 갔던 아기들을 무려 20명이나 다시 볼 수 있었어. 아기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나를 친엄마처럼 반겨주는 모습이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몰라. 참, 엄마가 최고로 오래 돌봤던 우리 서원이…. 백일 전후 신생아들만 보다가 서원이를 오랫동안 돌보면서 이유식도 처음 만들어 먹여보고, 산책하러 참 많이도 나갔었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엄마랑 소통했던 그런 아기야."

입양 가족들이 모이는 입양의 날 행사에서 엄마와 서원이(위탁 아동), 그리고 동생과 함께.

-엄마, 나도 지금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고 있잖아. 엄마가 원했던 거야? 내가 사회복지사가 된 데에는 엄마 영향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엄마는 우리 딸이 일하는 여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왕이면 도움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엄마가 평생 보고 해왔던 일이 위탁모 일이라 그런지 '우리 딸도 나중에 크면 홀트 선생님처럼 아기들에게 새 가정을 만들어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이 있었지. 신기하게도 홀트 안에서 엄마는 위탁모로, 우리 딸은 홀트사회복지사가 되었네. 너무나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야."

-마지막으로, 엄마가 바라는 건 뭐야?

"엄마는 우선 우리 가족이 건강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새로 생길 또 다른 가족, 우리 사위와 사돈댁도 모두 다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되길 바라. 든든한 우리 사위와 알콩달콩 지금처럼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건강한 가정 꾸려 나가길 바라고 늘 응원해. 그리고 빨리 예쁜 손주도 봤으면 좋겠어. 엄마는 할머니 될 준비 다 되었어. 호호.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우리 딸이 홀트 안에서 전문 상담가로서 잘 성장해나갔으면 좋겠어. 엄마가 늘 응원하는 것 잊지 말고…."

결혼을 앞두면 모두 효녀·효자가 된다더니…. 엄마와 함께한 템플스테이 여행을 통해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엄마가 살아온 얘기와 내 미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한다. 평생 사랑을 베풀면서 살아오신 모습을 보며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성장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한다. 내 가장 친한 친구, 나와 늘 소통하는 존재, 내가 닮고 싶은 롤모델, 힘들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기댈 나무…. 내 엄마라서 다행이고, 내가 엄마 딸이라서 감사하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늘 함께 해주시길….

/전은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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