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29) 우포늪생명길을 걸어보실래요

한 달 전 아침 5시 30분께 우포늪에 있었습니다. 새벽의 아름다움을 본 뒤로는 일찍 가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우포늪을 걷다가 줄들이 그어져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좀 더 가니까 그런 줄이 한 곳에만 있지 않고 여기저기 보였는데 관심을 갖고 보니 그 줄을 그은 주인공이 다름 아닌 지렁이였습니다.

지렁이 하면 어떤 생각이 납니까? 저는 예전엔 지렁이를 잘 몰라 그저 징그럽다고만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다 지렁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땅들을 정화시키고 기름지게 해준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생태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지렁이를 새롭게 보게 되었으며 언젠간 지렁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날처럼 지렁이를 유심히 본 적은 없었습니다.

◇우포에 오면 누구나 예술가

그날 따오기복원센터 인근에서 사초군락 가는 중간에 지렁이들이 만든 예술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 삶의 흔적이 바로 예술적이지 않은가라는 느낌을 받으며 저도 나름대로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예술가가 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스쳐지나가던 일상에서 새롭게 본 예술작품이라 우포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감사히 생각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물론 기분 좋은 상쾌한 하루를 시작했겠죠?

며칠 전 서울에서 와서 우포늪생명길을 걷는 분들과 주매리 잠수교에서 사지제방 가기 전 너무나 많은 지렁이들이 줄을 긋는 붓질을 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새벽을 걷던 그 일행에게 '지렁이가 만든 예술품'이라며 이야기해주니 "이야, 자연이 만든 그림이네" 하는 감탄과 동시에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쳐 버리던 지렁이들에게서 예술 작품을 본 것입니다. "어, 여기엔 그보다 더한 아름다운 그림이 있네" 하면서 다른 곳들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연을 유심히 보기에 가능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우포늪에 오시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빛의 제국> 등의 소설을 쓴,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가운데 하나인 김영하는 '인간은 예술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바보 같지만 이상하고 대담한 생각이 창조의 원천'이라며 '주변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고독의 시간 갖고 뜸 들이면 수준 높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직장인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데, '인간은 노동가가 아닌 원래 예술가로 태어났기에'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렁이가 만들어낸 흔적처럼 우포를 찾는 여러분들의 삶이 독창적이기에 예술이 될 것이라 믿어 봅니다. 여러분들이 저마다 '내가' 하나의 창의적인 독특한 거리를 만든다면 문화 융성은 물론 재미있는 나라, 자부심을 가진 아버지·어머니가 되지 않을까요?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우포늪에 옵니다. 우포늪은 생태예술의 고향이자 수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진이 예술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확히 몰랐습니다.

우포늪에 활짝 핀 가시연꽃.

사진이 언제부터 예술의 한 분야가 되었는지 몰랐다가 최근에 '늪이 된 우포늪 사진가' 정봉채 교수로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1967년 현대미술의 고향인 독일 카셀에서 사진이 현대 미술임이 선포됐다고 들었습니다. 전엔 사진기라는 기계로 찍는다고 취급받았으나 인간의 눈으로 찍고 눈은 마음의 창이기에 창의적이라 예술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당신의 귀중한 마음의 창으로 그린 작품이니 당연히 독특한 당신만의 작품을 우포에서 찍기 바랍니다.

◇ 7 ~ 8월의 우포늪

7월 우포늪은 매우 덥습니다. 그늘이 그립습니다. 며칠 전 "아이구 나무 그늘이 하나도 없네"하면서 할머니 한 분이 손녀와 함께 생태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주 더운 시간인 오후 2시께였습니다.

우포늪 생명길을 걸으러 서울에서 온 팀과 함께 대대제방에서 주매제방까지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더위와 전혀 관계없이 우포늪의 매력을 느끼고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만끽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사지포제방 부근 '사랑나무' 있는 데서 "이 멋진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하면서, 전통 노래인 '사철가'를 멋지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날씨와 우포에 대한 정보 없이 와서 날씨 탓하는 방문객과 우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이들 가운데 어느 쪽이 되고 싶습니까? 어쨌든 더운 여름날엔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는 피하신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방문한 서승종 씨는 우포늪이 6시에 문닫는 줄 알고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들르지 않고 왔답니다. 처음엔 그냥 우포늪이었는데 물꿩과 가시연꽃 등에 관한 해설을 들으니 우포늪이 생태계의 보고로 새롭게 보였다고 말합니다. 장동건·문근영·신민아·안재욱·손담비와 비 등이 와서 촬영했다고 하니 안내판을 세워놓으면 좋겠다며, "세트장이 있거나 일부러 만들어서가 아니라 경치가 좋으니 찍었잖아요"라 합니다. "우포늪에 관한 실시간 정보가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떠났습니다.

더운 7월에는 어떤 곳을 추천하느냐고 물어보니 김군자 해설사는 시간이 있는 분들은 우포늪생명길을 걸으시면 좋고 바쁜 분들은 그늘이 없는 대대제방보다는 이태리포플러가 있는 곳을 추천했습니다. 백외숙 해설사는 그늘이 있는 주매제방 소목마을 소목산에서 징검다리까지 걸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여름은 수생식물이 주인공입니다. 가시연들이 드디어 꽃대를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8월에는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근래 물꿩이 와서 새를 좋아하는 분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새벽부터 사진을 찍습니다. 무거운 장비 때문인지 차를 몰고 안에까지 들어오니 낙동강유역환경청에서는 단속하느라 매우 바쁩니다.

우포늪생명길을 걸을 때마다 대단히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늘 한 곳에서 쉬시다가 마음의 여유가 있으시면 서정홍 농부시인의 시를 떠올리면 어떨까요? '저 높고 푸른 산은/ 오르는게 아니라/ 손님처럼/ 천천히 들어가는 거래요/ 나무와 풀과 새들이/ 함께 사는 집이라/ 시끄럽게 노래 부르거나/큰 소리로 말해서도 안 된대요.'

/노용호(우포늪관리사업소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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