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뛰어 넘는 한국판 블록버스터…흥행 실패한다면 놀라운 기술력 물거품

고릴라와 야구 이 둘 사이에 어떤 스토리가 연결될 수 있을까? 영화 <미스터고> 흥행의 가장 큰 우려는 스토리의 접착력에 대한 의심이다. 사실 <미스터고> 영화 포스터에서 기대감을 느끼는 영화팬은 많지 않다. 사실감을 중시하는 한국 영화팬에게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설정은 너무 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린이 영화로 취급받기도 한다. 심지어 고릴라에게 홈런을 맞아 패배하는 이야기에 모멸감을 말하는 야구팬도 있다.

고릴라가 야구 한다는 빈약한 단초로 어떻게 한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의심을 가지는 관객을 김용화 감독은 엉덩이를 들썩거리지 않고 눈을 떼지 못하게 사로잡아 영화 끝까지 끌고 간다. 인간과 고릴라의 야구 수싸움, 고릴라를 둘러싼 인간들 간의 경쟁, 고릴라 간의 대결 등 영화는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감 풍부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조금도 상투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고릴라가 홈런을 친 후 누상을 돌 때 한번쯤 누를 밟지 않고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끌어낼 법도 한데 미스터고는 관객이 먼저 가서 기다리게 만드는 쉬운 이야기는 손대지 않는다. 항상 앞서 관객을 기다리고 관객이 주워온 이야기의 파편을 맞추어 영화적 감동의 징표를 완성한다. <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로 드라마에 발군의 솜씨를 보여준 김용화 감독은 <미스터고>에서도 기대치를 충족시켜준다.

영화 <미스터고>의 한 장면.

<미스터고>에 대한 또 하나의 우려는 <미스터고>가 가장 자랑하는 CG다. 과연 할리우드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관객들에게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고릴라 캐릭터가 액션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인데 많은 평론가들이 일치한 것처럼 이 부분은 의심의 여지없는 성공이다. 고릴라 링링은 <스파이더맨>보다 더 박진감 있게 잠실구장을 날아다니고 링링이 친 공은 극장까지 튀어나온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와서도 링링의 모습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돈다. 실사 영화에서 이 정도로 성공한 CG 캐릭터를 본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고>는 한국 영화사만 아니라 세계 영화사의 성취라고도 할 수 있다.

<미스터고>에서 또 우려했던 것이 언어의 장벽이다. 성동일과 함께 주연을 맡은 17세 소녀 서교는 중국인이다. 물론 중국인 서교의 한국어 발음은 어색하다. 그러나 연기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건 서교가 성동일 외에는 한국 배우들과 한국어로 대면하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고 성동일도 감정선이 분명한 장면에서만 만나 대사와 연기가 어렵지 않았다. 어린 외국 배우에 대해 감독이 영리하게 대처한 것 같다.

영화 <미스터고>는 우려했던 부분들을 훌륭히 극복하면서 우리에게 재밌고 놀라운 영화로 다가왔다. 영화의 완성도는 그간 한국 블록버스터가 이룬 성취를 모두 뛰어넘는다. <미스터고>가 이룬 성취는 앞으로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 맞선 경쟁자로 올라서는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만약 <미스터고>가 실패한다면 한국은 할리우드 식의 블록버스터를 접어야 한다. 왜냐면 <미스터고> 완성도를 뛰어넘는 영화는 할리우드에서도 일년에 몇 편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초반이라 단정하긴 이르지만 영화 초반 흥행이 예상보다 저조하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고릴라가 야구한다는 설정 자체를 관객이 기대하지 않는 걸까?

<미스터고>가 실패한다면 그건 영화의 재앙이 아니라 관객의 재앙이 될 것이다. 영화의 실패로 인한 흥행 실패는 영화인들이 반성하면 된다. 그러나 관객들의 실패는 영화인들로선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고 어떤 스토리를 가져가야 관객들이 한국판 블록버스터를 인정해줄까? 놀라운 기술적 성취와 나름의 드라마 기대치를 충족시킨 김용화 감독도 실패했다는 것은 한국 영화계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될지도 모르겠다.

/거다란(거다란·http://geodaran.com/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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