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52) 창녕 양지사랑양봉원 전지헌 대표

"벌은 꿀 생산 외에도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벌은 생태계의 수호자입니다. 벌이 없으면 식물은 수정을 할 수 없습니다. 한 논문에 따르면 벌이 하는 일을 돈으로 환산하면 6조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벌을 지키기 위해서는 '꿀벌지기'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꿀벌지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창녕군 대합면에서 벌을 키우는 전지헌(44) 양지사랑양봉원 대표는 벌과 꿀벌지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뒤늦게 찾은 길 = "항상 내가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그것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서울에서는 회색 도시의 공허함이 쌓여만 갔습니다."

전 대표가 서울 생활을 접고 귀농한 것은 7년 전이다. 2006년 12월 창녕으로 와서 2007년부터 벌을 키웠다. 2002년 추석 무렵 방문한 고향집에서 전 대표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막상 시골에 대한 동경을 가슴 가득 품었지만, 바로 귀농을 실행하지는 못했다.

양지사랑양봉원 전지헌 대표가 밀랍을 소개하고 있다.

"귀농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이 양봉을 하고 있었습니다. 벌도 하나의 아이템이 되겠다 싶었죠. 그러다 번쩍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어머니가 벌을 키우게 된 계기가 생각났죠."

30여 년 전 전 대표의 부모님은 2000평 밭 가득 고추를 키웠다. 그런데 고된 농사는 전 대표 어머니에게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라는 고질병을 안겨줬다.

"누군가 어머니에게 '벌쟁이는 무릎 아픈 사람이 없다 카데'라고 말한 것이 양봉의 시초였습니다. 어머니가 처음 2통으로 양봉을 시작해서 몇 년 뒤 50통으로 규모를 키웠죠. 하루에 수십 방씩 벌에 쏘이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그런데 3년쯤 지나니 정말 신기하게도 관절염 고통이 사라진 겁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봉독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봉독'에 집중해보자 싶었다. 1년 정도 자료 정리와 분석을 해보니 비전이 보였다.

◇양봉도 경영 = 귀농 후 책으로 익힌 양봉 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며 새로운 실험도 반복했다. 그렇게 3년가량 꿀벌과 동고동락하며 벌의 생리를 조금씩 이해할 무렵, 어느 날 저녁 아내가 걱정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돈이 바닥난 것이다.

"당장 다음 달 생활비가 걱정인데 남편이 양봉장 규모를 늘리고 양봉자재 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 거죠. 열심히 해도 돈이 모이지 않는 양봉업 속성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하겠다고 절감했습니다."

손익 분기점을 냉철히 판단해 300통으로 불어난 양봉장 규모를 절반으로 줄였다. 150통으로 줄이면서 내실 있는 경영을 통해 꿀과 봉독을 생산, 그해 봉독 생산량 기준 전국 3위를 했다.

양봉은 한 곳에서 벌을 키우는 고정 양봉과 꽃이 피는 곳을 찾아 이동하는 이동 양봉이 있다. 전 대표는 고정 양봉 방식으로 벌을 키운다.

전 대표는 아카시아 꿀을 1번 뜨고, 야생화 꿀을 1번 뜬다. 그만큼 꿀이 벌통 속에서 숙성된다.

"그런데 이것이 경제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품질을 좋게 하려고 꿀을 적게 뜨는 것을 소비자가 알아주지 않아요. 똑같은 꿀이라는 거죠."

처음 한 병 10만 원에 인터넷에 올렸다. 일주일이 지나도 문의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전지헌 대표가 벌을 살펴보고 있다.

딜레마에 빠졌다. 좋은 꿀을 인정받지 못해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과 소비자들의 꿀 결정에 대한 불신.

"화도 나고 어쩔 수 없이 첫해에 가격을 3만 원으로 조정해서 내놨습니다. 그랬더니 2주 만에 다 팔려버렸어요. 처음 한 병을 사갔다가 다른 꿀과 차별화되니까 한 박스(12병)씩 주문하더군요. "

전 대표는 꿀을 택배 보내면서 고객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을 소개하고 벌을 키우고 꿀을 채취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꿀이 결정화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풀어썼다.

"다 쓰고 보니 3장이나 되더군요. 그대로 꿀에 동봉해 보냈더니 단골이 생겼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을 넣어서 보냈다. 그 맛을 보고 또 한 사람이 열 사람을 고객으로 소개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소비자와 '소통 경영'을 하면서 꿀 값도 올리게 됐다.

"한 단계 도약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인터넷이나 택배 등을 통해 소통해 왔다면 이제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요. 농업도 경영인데 좋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만들고 알리고 소통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전 대표가 생각하는 것은 도시민의 농촌 방문 체험 활동이다. 이를 위해 전 대표는 연구실과 방문객 쉼터 등으로 이용할 2층짜리 건물을 하나 짓고 있다. 올 10월이면 완공돼 내년에는 체험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짜 꿀 불신 안타까워 = 양지사랑양봉원에서는 꿀과 봉독, 프로폴리스, 꽃가루, 밀랍(벌집 녹인 것), 로열젤리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전 대표는 "1년 중 절반은 논다"고 말했다. 2월 입춘부터 본격적으로 일한다. 벌을 깨우는 것이다. 벌통 하나에는 5000~6000마리의 벌이 있다. 전 대표는 300통가량의 벌통이 있고, 이 중 꿀을 채취하는 것은 150통가량이다.

벌을 깨울 때는 인공 꽃가루 등으로 먹이를 준다. 3월이 되면 벌 산란은 탄력을 받는다. 이때 집을 증소해주고, 설탕물 등 먹이를 준다. 4월이 되면 산란이 폭발한다.

5월 초 아카시아 꽃이 피면 2~3일 후부터 꿀이 조금씩 들어온다. 이때 중요한 작업을 한다. 바로 '정리 채밀'을 해준다. 꽃이 피기 전 설탕물을 먹고 만든 꿀을 전부 빼버리는 것이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빼고 빈집을 다시 넣습니다. 집이 텅 비어 있으니 벌이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정리 채밀을 하기 때문에 꿀에 설탕 꿀, 즉 사양꿀이 섞일 수도 없습니다. 설탕물을 주는 것은 꽃이 피지 않는 시기, 벌의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정제 전 봉독(오른쪽)과 정제한 제품.

5월 말쯤 아카시아 꿀을 한번 뜨고 나면 6월 야생화 꿀을 뜬다. 그후 6~9월 봉독 채취를 한다.

"봉독은 양봉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부분입니다. 진출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현재는 제약회사와 화장품 회사가 주 고객이지만, 축산 분야도 적용 가능합니다."

전 대표는 현재 농촌진흥청 실용화재단과 창녕군과 연계해 축산분야 항생제 대체 효과에 대해 실험 중이다.

◇꿀벌지기 후진 양성을 = 전 대표는 꿀벌의 중요성과 꿀벌지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벌은 스스로 겨울을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데 꿀벌지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환경 재앙이 될 것입니다."

처음 양봉에 뛰어들어 3년간은 기술이 없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벌의 생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꿀벌지기 양성과 기술 전수가 필요합니다. 귀농했을 때 이 지역 양봉인 150명 중 제가 가장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80명으로 줄었는데도 제가 가장 막내입니다. 평균 나이가 68세입니다. 올해도 78세인 두 분이 일을 그만뒀습니다. 10년이 지나면 70% 정도가 그만둘 겁니다. 후진이 없습니다. 돈이 안 되니까 다들 안 하려고 합니다."

전 대표는 이걸 깨려고 연구 중이다. 새로운 부가 가치를 창출해 알리고 유통하는 것, 그리고 체험으로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 대표의 향후 계획은 봉독 시장 확대.

전 대표는 양봉 농가들을 결집하고 한 단계 성숙한 사업형태를 위해 영농조합법인을 결성해 봉독 판로 개척에 주력하고 있다. 또 수출 경쟁력을 위해 봉독 생산 이력제도 추진하고 있다. 농가별 생산자 코드를 부여한 이력제로 신뢰성을 높여 세계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희망을 보고 꿀벌지기가 계속 양성되기를 바라고 있다.

문의 010-6580-6589. 

<추천이유>

◇박재영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축산전문가 = 전지헌 양지사랑양봉원 대표는 직장생활 10년 경력을 마감하고, 시골의 정경과 향기가 묻어있는 고향에서 자연과 함께 꿈과 희망을 실현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귀농했습니다. 인간에게 무한한 가치를 제공하는 봉산품을 사업화하여 농촌의 소득원으로 꿀과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봉독, 화분 등을 생산하여 국내시장은 물론 봉산물을 세계에 수출하려는 야심찬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양봉 CEO입니다. 또한 양봉협회 총무 역할을 맡아 회원들의 어려운 일들과 새로운 정보와 교육, 사업추진계획 등을 협의하고 알뜰한 모임체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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