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다시 만난 '산복도로 시스터즈'

서랍 속 고등학교 교복을 꺼내 입고 여행을 떠났던 20대들, 그녀들이 30대가 됐다. 학교가 산복도로 옆에 있다고 '산복도로 시스터즈'라 자칭했던 마산여고 동창생들 박영준, 서유미, 서은지, 최지혜 씨.

10년 전 '스물세 살 동갑내기 여고생' 넷은 대학 졸업 전에 단조로운 삶에 새로운 '도발'을 시도했다. 당시 마산역 앞에서 교복을 입고 순천여행을 떠나기 전에 찍은 '스물세 살 고딩들'의 사진과 '꿈꾸던 일탈'을 소개한 기사는 높은 클릭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10년 전 지혜 씨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해외여행을 꿈꿨고, 유미·은지 씨는 교사가 되고자 임용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영준 씨는 다른 대학으로 옮겨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이 많던 이들은 여행에서 해답보다는 서로에게 힘을 주고 싶어 했었다.

서른두 살이 된 그녀들의 삶이 궁금해 연락을 해봤다. 그들이 계획한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는지, 아직도 그때처럼 끈끈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을까.

지난 5월 최지혜(가운데) 씨 결혼식날 모인 '산복도로 시스터즈'. 왼쪽부터 박영준, 서은지 씨, 지혜 씨 대학동기, 서유미 씨와 표세호 기자.

끈끈한 우정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매달 정기모임을 하면서 여행도 가고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 고민도 털어놓는다. 올 들어 짝을 만나 결혼한 친구가 생기면서 예전처럼 자주 모이지 못하지만 들어주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토닥인다.

지혜 씨는 울산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 유미 씨는 창원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 은지 씨는 학원 경력을 쌓아 창원에서 수학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영준 씨는 10년 전 새로 잡았던 길을 따라 물리치료사가 됐다. 그러다보니 학교, 학원, 병원에서 모두 '선생님'으로 부르는 일을 하는 셈이다.

은지 씨는 "정말 특별했죠. 살아오는 데 활력소였어요.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할 거예요. 그때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해요"라고 그때를 떠올렸다. 지각생이 있어 기차를 놓치고 시외버스를 겨우 잡아타면서 여행계획을 새로 짰던 일들, 사람들이 감쪽같이 자신들을 '고딩'으로 봐주던 추억들.

'개그소녀'가 별명인 은지 씨는 '개그본능'이 예전 같지 않단다. "개그감이 다 떨어졌어요. 아이들과 공부할 때 도움이 많이 되는 데 그래도 웃기고 싶은 본능은 감출 수가 없어요. 공부는 어쨌든 해야 하지만 신나게 하는 게 좋잖아요."

오랫동안 준비했던 임용시험을 그만둬 아쉽지만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금은 안정이 됐지만, 지난 1년 정도는 전쟁이었어요. 힘들었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제는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싶어요."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넷 중에 임용시험을 제일 먼저 통과해 선생님이 된 유미 씨는 지난 2월 결혼했다. 영준 씨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지혜 씨는 임용시험을 준비하기 전에 계획대로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자신의 삶에 대해 '놀고 싶을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했는데 운이 좋았다고 했다. 지혜 씨는 지난 5월에 결혼을 했다. 결혼식 때 제자들이 축가도 불렀다.

지혜 씨는 10년 전 '도발'에 대해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정말 재미있었죠. 친구들과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했다면 후회했을 것 같아요. 좋은 추억이자 평생 추억"이라고 했다.

교복 여행은 그녀들에게 삶에 '좋은 처방'이었고, 아직 '약발'이 계속되고 있다. 약효가 다됐다 싶을 때 그녀들은 다시 여행을 떠날 참이다. '산복도로 시스터즈', 어떤 기발한 여행을 또 준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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