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진보 세력간 힘겨루기로 만든 교과서…수험생 부담 늘리기로 변질 우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하거나 수업시수를 늘리는 등 최근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공교육 체제 와해와 사교육시장 팽창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사 수능 필수 지정은)사회탐구영역 선택 과목에서 타 과목의 존립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한국사회과교육학회)

"한국사 수능 필수는 역사교육 강화를 위한 가장 효율적 수단이다. 이 문제를 교육계 내부의 밥그릇 싸움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사 수능 필수 과목 지정 등 역사교육 강화'를 놓고 교육계가 시끄럽다.

같은 사안을 놓고 한국사회과교육학회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상반된 주장을 해 학부모와 교사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두 단체의 주장 중 누구 말이 옳을까?

역사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조상의 삶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지만 문화민족으로서 자부심과 긍지까지 의심케 하는 심각한 문제다.

서울의 한 일간지와 입시 전문업체가 전국의 고등학생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 결과에 따르면 국내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7명이 한국전쟁을 '북침'으로 알고 있다는 보도로 촉발됐다. 뒤에 알고 보니 설문문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의 응답이라는 게 밝혀진 해프닝이었지만 역사교육 강화에 대통령까지 나서게 됐다.

역사교육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3·1 운동을 3점 1운동으로 읽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능에서 한국사를 선택한 수험생은 전체 수험생의 7.1%에 불과하다는 보도는 우리 역사가 청소년들로부터 얼마나 홀대받고 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역사교육 강화를 위해 교육부는 고교생의 한국사 이수단위를 현행 5단위에서 6단위로 늘리고 집중이수제에서 국사과목을 폐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한국사를 수학능력고사에서 필수교과로 할 것인지는 이달 말까지 결정해 발표하겠다고 한다.

역사교육강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수업시간 수만 늘리거나 수능에서 필수과목으로 바꾼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물론 사회 교과 11과목 중 역사 교과 시간 수를 늘리면 타교과가 위축되거나 혹은 홀대받을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당위성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어떤 방법으로 강화할 것인가가 문제다.

우리 역사는 사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수구세력과 진보세력, 애국세력과 매국세력, 보수세력과 진보세력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뉴라이트계열의 수구세력들은 한국현대사학회의 '중·고등 한국사 교과서 분석과 제언' 학술대회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조선 사회를 변혁하고 외세 침략에 맞서려 한 투쟁으로 본 관점은 북한 학계와 닮은 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현행 교과서들은 해방 후 좌익이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것이 소련의 지시 때문이란 점을 감추고 있다"며 교과서가 진보세력들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자고 건의했던 게 뉴라이트계의 시각이다. 이러한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만든 교과서가 고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심의에서 8종이 본 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최종 결과는 8월 30일 발표되겠지만, 이들이 만든 교과서를 많이 배울수록 애국심이 높아지고 민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강화될까?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검인정교과서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수학능력고사라는 과정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나라에서는 어떤 과목도 내용이 많으면 수험생의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수능점수를 잘 받기 위한 암기량만 늘리는 역사교육강화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는커녕 역사 공부에 대한 진저리만 내게 하는 건 아닐까?

/김용택(참교육 이야기·http://cham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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