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엎드려 떨며 용서 비는 전과 3범…반성문 받고 보내

독자 이영수(가명) 씨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잡았다가 보내 준 사연을 보내왔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범죄자를 사적으로 용서해줌으로써 또 다른 범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됩니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이영수 씨가 보내온 글의 전문을 싣습니다. 이 글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보내주시면 지면에 보도하겠습니다.

☞의견 주실 곳 : 이메일 sori@idomin.com, 페이스북 독자모임

어제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오후 1시 40분경이었는데요. 정말 그 도둑은 운도 없었어요. 하필 그 시간에 제가 집에 들어갔거든요. 도둑은 아마도 낮에 빈집털이를 노린 모양인데요. 설마 주인이 집에 들어올까 하고 마음 턱 놓고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우리 집은 현관문을 중심으로 양옆에 두 개의 베란다가 있는 구조인데요. 한쪽은 거실 베란다고 다른 한쪽은 작은방 베란다에요. 도둑은 작은방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뜯어내고 작은방을 통해 집안으로 침투했던 거지요. 창문과 방충망을 원래대로 해놓은 걸 보면 어느 정도 경력은 있는 도둑이었던가 봐요.

하지만 도둑은 정말 재수가 없었어요. 우리 집에 침투하자마자 화장실이 급했던 겁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는데 제가 현관문을 열쇠로 여는 소리를 듣게 됐던 거고요. 이 도둑, 부랴부랴 뛰어나와 열리는 현관문을 타고 밖으로 튀어나왔어요. 그러고는 잽싸게 도망을 치더군요.

   

아뿔싸. 그런데 우리 집이 좀 길쭉하게 생겼거든요. 현관에서 대문까지 거리가 상당히 됩니다. 제가 한번 걸어보니 마흔세 걸음이네요. 잽싸게 도망쳐 저 앞에 내닫긴 했지만 제가 또 누굽니까? 현행총검술의 창안자로 육본에 가 참모 총장이 직접 주는 노란 봉투와 14박15일의 포상휴가를 받았으며, 한때 방위 잡는 조교로 맹위를 떨쳤던 인물 아니겠습니까.

일단 대문까지 따라가 도둑을 잡아와서 거실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눈을 감게 한 다음, 현관문 자물쇠를 안에서 걸어 잠갔습니다. 그리고 동네형님에게 전화를 걸었죠.

"형님,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빨리 오세요. 지금 제게 잡혀 있습니다."

"어, 뭐라고? 알았어."

동네형님이 오기 전에 우선 심문을 했습니다. 물론 눈을 감고 엎드린 상태로 대답만 하게 했죠. 이런 방법을 어떻게 알았느냐고요? 다 옛날에 큰 희생을 치르고 배운 겁니다. 이렇게 해야 도망도 못 가고 다른 수도 못 부리죠. 가족관계, 주소, 직업, 수입 정도, 침투경위와 경로 등을 차례로 물었습니다. 그다음 전과 여부를 물었죠. 전과 3범이랍니다.

"야, 너 큰일 났다. 이제 전과 4범이네. 너 최소 3년에다 보호감호 5년이다. 넌 이제 인생 종 친 거야."

왕년에 법무부 출장 갔을 때 배운 얕은 지식으로 겁을 주었더니 벌벌 떨면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넌 절대 말하지 마. 내가 묻는 말에만 간단하게 대답해. 함부로 입 열면 너 죽는다!"

그러는 중에 동네형님이 왔습니다. 제 앞에 엎드려 있는 도둑을 보자 정말 황당한가 봅니다. 혀를 끌끌 차더니 한심한 혹은 애처로운 눈길로 내려다봅니다.

"어떻게 할까요, 형님?"

"야, 빨리 신고해 경찰에 넘겨라. 다른 피해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자 이 도둑, 다시 벌벌 떨면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라며 울먹이더군요.

"조용히 안 해? 입 열면 죽는다고 했어, 안 했어."

잠잠해지는 도둑. 불쌍해집니다. 사실 처음에 도둑을 잡아오자마자 112에 신고하려고 휴대전화부터 들었지만, 막상 고개를 처박고 엎드려있는 도둑 꼴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얼마나 살기 한심했으면 우리 집 같은 집을 털겠다고 들어왔을까.'

도둑이 메고 온 가방에서 지갑과 다른 소지품들을 꺼내 확인해보니 현금 9000원과 신용카드 몇 장, 신분증, 운전면허증뿐입니다. 특별한 거라곤 휴대용 휴지가 하나 있었다는 것. 도둑의 가방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이건 뭐 올챙이 도둑이로군. 이러고도 전과 3범이야?"

문득 오래된 옛날, 노동사건으로 교도소에 갔을 때 절도방에서 함께 지내던 도둑놈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들은 정말 불쌍했습니다. 성공한 도둑은 한 놈도 없었습니다. 시내버스 매표소에서 토큰 한주먹 쥐고 튀다가 잡혀온 놈, 남의 집 담 넘자마자 주인에게 들켜 잡혀온 놈, 야밤에 문 닫은 식당에 들어가 금전출납기 털고(해봐야 잔돈푼) 술 마시다 잡혀온 놈.

그중에 한 사람이 전과가 3범이었습니다. 이번에 형을 받으면 4범이 되는데 징역 3년에 보호감호 5년이라고 이미 저희끼리 판결을 내리는 상태였죠. 40대 초반이었던 그는 정말 초췌했습니다. 한 달 정도 혼거방 생활을 하다 독방으로 옮겨 생활했지만, 늘 그가 궁금해 살피곤 했습니다.

이틀인가 사흘 모자라는 6개월을 채우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던 제가 밍크 담요와 러닝, 팬티 몇 장을 주자 그가 "정말이지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다"며 눈물을 펑펑 쏟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는 나중에 김태촌이 있었다는 청송보호감호소로 갈 것이었는데, 그곳은 정말 춥고 무서운 곳이었던 거지요.

그래서 용서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은 도둑을 잡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 때부터 용서해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도둑질에는 멍청하지만 눈치는 빠른 우리의 도둑도 그걸 눈치 채고 있었을지 모르고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엎드려 가만 있었던 것일지도.

게다가 집안을 둘러본 결과 별다른 피해상황도 발견되지 않았고, 도둑의 소지품으로 보아 다른 피해자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죠. 반성문을 겸한 자술서를 쓰게 했습니다. 물론 도둑 작문능력이 순간적으로 되질 않으니 제가 불러주는 대로. 그리고 자술서에 서명날인도 하게 했습니다. 날인은 아시다시피 사인+지장. 지장 이걸, 엄지 전체에 인주를 골고루 발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게 하는데, 이것도 다 옛날 법무부 또는 내무부 출장 갔을 때 배운 겁니다.

'아, 이거 경찰서, 까막소 들락거리는 것도 가끔 쓸모가 있네.'

슬쩍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문하는 기술이 이 정도면 수사관 뺨치겠는데' '아무래도 이거 경찰관이 됐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긴 뭐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니까 이 정도 풍월도 못 읊는다면 바보겠지요.

그렇게 도둑을 보내고 나니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아, 우리 집에도 이런 일이 생기다니. 무료한 인생살이에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하지만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우리 애들 엄마는 살이 떨린다며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저를 나무랐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이영수(가명·창원시 마산합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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