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중에서 만났던 야론. 그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야론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 같았다. 오랫동안 자국인 이스라엘에서 전문업으로 해왔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이스라엘이 아닌 암스테르담에서 둥지를 트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요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관련된 새로운 직업도 구했다고 했다.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는 요리사 자격증도, 요리 경력도 없었다. 결국 주방에서 설거지 일을 맡게 되었다. 요리를 할 수 없다는 사실보다 주방에서 일할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에게는 무한한 기쁨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야론은 자신이 묵은 플랫(같은 층에 있는 여러 방을 여러명이 살 수 있도록 꾸민 집)에 사는 친구들과 집안 구석구석을 안내해주었다. 나는 구석에 잔뜩 녹슬어 있는, 거의 쓰러져가는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런 자전거를 야론은 자랑스럽게 소개해줬다.

"내 생일날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려고 공원에 갔어. 그리고 이 자전거를 발견했지. 자전거가 나에게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어. 순간, 이 자전거는 하늘이 내 생일 선물로 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어. 자, 정식으로 소개할게. 이 자전거는 내 여자친구, 이름은 데이지라고 해."

데이지는 낡고 바람도 빠져서 제 구실을 못하고 있었지만 야론은 수리도구를 구입해서 이곳 저곳 손을 보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수리가 다 되어 멋진 길을 데이지와 달릴거라고 꿈에 부풀어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에게 낡아서 더 이상 못써버리게 된 자전거가 그에게는 보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집 구경을 마치고 야론과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골목으로 갔다. 그곳에는 온갖 집안에서 가지고 나온 잡동사니와 옷, 신발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야론의 눈빛이 또 다시 빛났다. 어렸을 적부터 항상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트렌치코트 한 벌 장만 하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그곳에서 꿈에 그리던 트렌치코트를 발견했다. 허리라인이 잘록하게 들어간 그 트렌치코트는 누가 봐도 여성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마냥 기뻐하며 바로 지갑을 열었다. 그에겐 여성용이건 남성용이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자기 몸에 적당히 피트되는 그 트렌치코트에 이미 마음을 사로잡혔기에.

벼룩시장을 나와 시내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많은 인파 속에서 야론은 무엇인가 발견하고 따라갔다. 그의 눈은 또 한 번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로망이었던 멋진 콧수염을 가진 남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남자가 가게에 들어갔다. 야론은 그가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다 못해 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 내 이름은 야론이라고 해. 난 니 콧수염이 내가 세상에서 본 그 어떤 콧수염보다도 멋있다고 꼭 말하고 싶어서 이 곳에 들어왔어. 꼭 그 콧수염을 계속 유지하길 바라고 나도 앞으로 그런 멋진 콧수염을 만들어서 다시 한번 만나길 바래." 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괴짜 같기도 하지만 낯선 이에게 조차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에서 바로 옆에 사는 이웃사촌도 외면하는 우리 삶이 참 삭막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주변인들의 시선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내 친구 야론을 소개 시켜 주고 싶다.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 가지고 있던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자신이 새롭게 찾은 행복을 위해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낯선 이에게조차 스스럼없이 다가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자기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신형(김해시 장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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