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불편하다.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으니 그렇고, 쉽게 말할 수도 없으니 그렇다. 작년 겨울 한 중학교 졸업식이었다. 졸업장 받는 학생들 뒤로 이름과 별명 그리고 미래의 꿈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근데 얼추 셋 중 하나의 꿈이 공무원이다. 우린 안다, 걔들이 왜 그런 꿈을 꾸게 됐는지. 우린 또 안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공무원이란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 하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입에 담지 않는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짐작하듯 아이들의 꿈은 스스로 꾼 게 아니었을 것이다. 십중팔구 부모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실제 올 초 통계청이 초등학생과 부모를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물어봤다. 결과는 아이들이 운동선수-교사-연예인 순이었던 반면 부모들이 바라는 아이들의 직업은 의사-교사-공무원 순이었다. 꿈 많던 초등학생들이 부모의 의지로 그 꿈을 접고 있지만 역시 모두가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근데 모든 걸 까발리는 불편한 드라마가 있다. 누구도 쉽게 내뱉지 못하는 온갖 불편한 진실을, 그것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사의 입으로 낱낱이 전하는 몹시 불편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이다. 6학년 담임교사 마여진(고현정 분)은 말한다. "차별? 그게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에게 불공평한 차별대우를 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이 사회의 규칙이야"라고. 틀린 말 같지만, 아니 반드시 틀려야 할 말이지만, 그녀의 외침은 엄연한 진실이다. 단지 불편하단 이유로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MBC 수목드라마 〈여왕의 교실〉의 한 장면.

실제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공무원이 된 이들의 삶은 남다르다. 작년 한 해 공무원 본인과 자녀들의 대학등록금 무이자 대출이 4조 원을 넘었다. 물론 전부 세금이었다. 참고로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의 자녀도 연 2.9%의 이자를 부담한다. 그뿐인가. 작년까지 세금으로 공무원 연금에 지원해준 돈이 10조 이상이다. 올해도 3조 2000억 넘게 투입될 예정이다. 별의별 희한한 방식의 전관예우와 자녀들의 관계기관 특채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닌 세상이다. 거기다 비정규직 900만 시대에 정년까지 연장됐으니 어느 부모가 공무원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으랴.

마여진은 또 말한다. "생명존중 같은 거 없어도 공부만 잘 하면 의사가 될 수 있어. 정의감? 그런 거 없어도 성적만 높으면 다른 사람을 판결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 짜증나는 말이다. 무슨 그 따위 소릴 함부로 하냐고 대들고 싶은 말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 얘기에 감히 이의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 없다. 엄연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역시 불편하기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여왕의 교실>은 인기가 없다. 진실을 말하면 외톨이가 되는 세상, 그 불편한 진실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드라마의 미덕은 단지 모두가 말하지 않는 진실을 보여준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불편함에 맞서는 법을 냉철하게 제시해줌으로써 진가를 발휘한다. 그 역시 마여진의 입을 통해서다. 한 아이가 묻는다. "싸워서 이길 힘이 없는 약자는 그냥 당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요?" 그녀 왈, "굴복을 하든가, 싫으면 도망가든가! 이게 다 싫으면 목숨을 걸든가!" 자, 이 불편함으로 가득 찬 미친 세상, 어떻게 살 건가?

/김갑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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