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 삼계탕을 먹으면서, 올여름 내가 먹을 삼계탕 그릇 수를 대충 헤아려 보았다.

주변에 삼계탕을 좋아하는 이가 없어서 여름이 아니고서는 삼계탕을 즐겨 먹을 일이 없다. '보신'이 아니고서는 삼계탕을 맛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복날이 세 번은 찾아올 것이니, 적어도 세 번은 먹을 것이요, 보신 운운하며 몇 번은 더 동료나 지인들을 졸라볼 심산이다.

어릴 때 엄마가 끓여주는 삼계탕은 닭죽에 가까웠다. 커다란 솥에 닭 한 마리를 넣고, 찹쌀과 멥쌀을 한가득 넣고 끓여주었다. 인삼이나 약재는커녕 마늘과 대추만 한 움큼씩 넣었다. 다 끓인 뒤에도 닭의 껍질을 벗겨내고 살을 전부 발라서 골고루 그릇에 담아주었다.

엄마가 부엌에 식재료를 부려 놓았을 때만해도 소위 '오늘의 요리' 즉, 스페셜 요리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 몫의 '닭죽'이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삼계탕을 먹을 때마다 엄마의 닭죽이 생각난다. 내가 '탕'이나 '죽', '국' 같은 음식을 무척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물려준 체질적 기호와 엄마가 부지런히 해먹인 음식들 덕분이리라.

뚝배기 안의 열기가 얼굴에 확 끼쳤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나. 바닥이 보일 만큼 말끔히 비우고 나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뒤끝의 개운함에 스스로 흡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선뜻 문밖을 나서지 못하고 멀거니 바깥을 쳐다보는데, 남원에서 먹었던 추어탕이 떠올랐다.

그날도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동동주에 파전 한 접시 먹자고 했으나, 광한루 근처 음식점은 죄다 추어탕집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서 동동주를 찾으니, 돌아오는 답은 '없다'였다. 몇 군데 퇴짜를 맞고 나니 동동주보다 더 간절한 것이 배고픔이었다.

추어튀김 주문도 퇴짜 맞고, 추어탕만 판다는 추어탕집에서 우리는 추어탕에 소주를 마셨다. 그것도 별미였다. 식당을 찾아다니느라 살갗은 눅눅하고 끈적끈적해졌지만, 달게 먹은 추어탕 한 그릇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웬만한 탕은 다 좋아하고 잘 먹는지라 비와 낯선 장소와 친한 이들과 함께한 그날의 기억이 두 달 만에 삼계탕집에서 탕처럼 끓어올랐다가 천천히 식어갔다.

비가 와서일까. 비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탕이라면, 뜨거운 거라면 질색을 하는 성격 급한 이가 떠올랐다. 처음 만나 먹은 게 복국이었는데, 그가 복국이나 탕 같은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단 한 번의 식사로 그가 나와 식성이 비슷하다는 어마어마한 착각을 하고 말았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피식, 웃음만 난다. 이열치열이니, 복날이니 하면서 올해 삼계탕 한 번은 같이 먹으리라 다짐한다.

   
   

때마침 비가 그쳤다. 뜨거운 열기가 한바탕 내린 비로 어느 정도 식어 있었다. 개운함이 상쾌함으로 변한다.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심옥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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