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67) 홍싸리와 멧돼지

홍싸리와 멧돼지는 화투짝에서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패다. 홍싸리와 멧돼지는 행운과 횡재이고 복이라고 화투점을 친다. 한국 사람의 자연관으로는 7월 홍싸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싸리는 어떤 식물이기에 어려울까?

◇한국 싸리와 일본 싸리

우리나라에서 싸리는 소쿠리나 빗자루를 만드는 잡목이다. 집 울타리와 사립문을 만들기도 했다. 그냥 주변에 잡초처럼 흔하디 흔한 잡목이다. 소나무나 대나무처럼 지조와 절개를 노래하는 나무도 아니고 국화와 매화처럼 덕목을 노래하는 꽃도 아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싸리는 한국 싸리와 계급이 다르다.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물이 소나무라면 일본에서는 싸리가 가장 사랑받는 식물 중 하나이다.

   

◇조선 소나무 = 일본 싸리

한국 고시조(古時調)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식물 1위가 소나무라면 일본 옛날 시집 만요슈(万葉集)에 제일 많이 나오는 식물이 싸리라고 한다. 싸리는 일본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이기에 우리나라 소나무 같은 사랑을 받았을까? 우리나라 사람은 소나무를 나무 그 자체가 아니라 지조와 절개의 도덕적 유교 윤리로 소나무를 인격화한다. 일본은 하찮은 싸리 보잘것없는 싸리도 살아 있는 자연으로 있는 그대로 노래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봐 준다고 해도 왜 하필 싸리일까? 우리나라에 소나무와 매화를 읊은 시조는 있어도 싸리와 멧돼지를 읊은 시조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옛 시에 가장 많은 식물이 싸리일까?

싸리는 대의와 명분이 있는 나무도 아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처럼 천년을 살면서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도 아니다. 싸리는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데 왜 일본 사람들은 매화보다도 더 많이 싸리를 노래하고 사랑했을까? 일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일본만의 자연관이 무엇이기에 싸리를 노래했을까?

◇왜 7월인가?

멧돼지와 홍싸리는 음력 7월이다. 그래서 숫자 7이 된다. 싸리꽃은 양력 7월에서 8월 사이에 꽃이 피는데 음력 7월과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음력 7월이면 한여름이다. 한여름인데 왜 가을의 대표 꽃으로 일본은 싸리꽃을 선택했을까? 왜 음력 7월을 가을이라고 느꼈을까? 음력 7월과 24절기 백로(白露)가 있는 양력 9월 초 사이의 일본 자연을 싸리가 대표하고 있다.

◇가을(秋) 풀(草) 싸리(萩)

일본에서는 싸리를 ハギ 혹은 한자로 '추(萩)'라고 한다. 우리나라 한자로는 사철쑥 추, 가래나무 추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싸리를 萩(추)라고 한다. 가을 풀이란 뜻이다. 싸리는 풀이 아니고 나무이지만 키가 작아서 느낌은 나무가 아니고 풀처럼 느껴진다. 일본에서 가을 7대 풀꽃이 있다. 싸리꽃, 억새, 패랭이꽃, 도라지꽃, 마타리, 칡꽃, 등골나무꽃을 7대 가을 풀꽃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으뜸을 싸리로 꼽았다.

◇서양 장미 중국 모란 일본 싸리

기독교 서양 나라 사람들이 장미꽃을 사랑하고 중국 사람이 모란을 사랑한다면 일본 사람들은 가을 싸리꽃을 사랑했다. 일본 사람들은 싸리 꽃에 내려앉은 가을 이슬과 가을 바람을 노래했다. 싸리꽃은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꽃도 작고 볼품없다. 그런데 일본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다. 싸리꽃이 피면 사람들은 산에 싸리꽃 구경을 나간다. 아침 이슬에 젖은 싸리꽃, 가을 바람에 싸리꽃, 달과 싸리꽃, 사슴과 싸리꽃을 함께 노래했다.

싸리꽃밭에서 잠자는 멧돼지./일본국립박물관, 19세기 모치주키 교쿠센 그림

◇머리로 보는 자연, 가슴으로 느끼는 자연

일본에서 싸리꽃이 사랑받는 이유는 머리가 아니라 감성과 오감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온 몸으로 바라보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조와 절개를 노래하며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머리로 자연을 노래했다.

일본 사람들은 나팔꽃에 내려앉은 이슬처럼 짧은 찰나의 순간과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지진과 태풍 그리고 쓰나미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본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핀다. 자연 재해로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눈은 항상 자연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고 귀는 자연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했다.

◇자연재해와 자연

아침에 피었다가 지고 마는 나팔꽃을 사랑하고 나팔꽃에 내려앉은 새벽이슬을 사랑한 것이 일본 사람이다. 새벽이슬의 그 짧지만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태양이 뜨면 이슬이 사라져 버리듯 자기 목숨을 가미카제 특공대로 바칠 수 있는 것이다. 사쿠라처럼 순간 가장 화려하게 피었다가 한순간에 지는 자살특공대 가미카제가 될 수 있는 것도 일본의 자연관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자는 잠에 편안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고 일본 사람은 사쿠라 아름답게 핀 달밤에 다다미 방에 앉아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소나무와 매란국죽의 지조와 절개를 노래했다면 일본 시인과 화가는 있는 그대로 자연의 모습과 소리를 노래하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조선 선비들이 매란국죽 사군자를 그리며 대의와 명분을 이야기할 때 일본 시인은 작은 풀꽃과 이름모를 풀벌레 울음소리를 노래했다.

가을 들판에 잡초처럼 피어 있는 싸리에서 대자연의 변화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왜 멧돼지일까?

싸리꽃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싸리나무 아래 멧돼지다. 싸리꽃이 한창인 가을에 멧돼지 사냥을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단순하게 멧돼지 사냥철이라서 멧돼지와 싸리를 그렸다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문헌과 자료로는 멧돼지 사냥철이라고 해석을 한다. 하지만 일본 옛 그림과 일본 옛 시를 보면서 아마 싸리나무 아래 잠을 자고 쉬고 있는 멧돼지 그림과 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국 사람의 눈과 머리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화투짝 7월의 싸리와 멧돼지는 한국으로 들어와서 재수 좋은 행운과 복돼지로 변신한다. 7월 홍싸리와 돼지를 봐서 오늘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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