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창원서 커피 소품점 운영하는 박상식·황미영 부부

지난 5월 22일 경남도민일보 1면 <함께 기뻐해주세요> 코너에 커피소품점을 연 형부를 응원하는 글이 실렸다. 주위에서 흔하지 않은 전문 커피소품점이라는 것과 '드디어 열게 되었다'는 문장 가운데 '드디어'라는 부사가 눈길을 잡았다. 뭔가 사연 있을 것임을 직감하고 찾아간 곳은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마을 끝자락이었다.

두 벽면엔 커피 소품들이 진열돼 있고 가운데는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다. 한쪽에 쌓여있는 박스를 보니 계속 채우고 있는 미완의 느낌이다. 점심시간 무렵이지만, 박상식(42·사진 왼쪽)·황미영(38) 부부는 새로 들어온 물건 정리로 분주하다. 커피숍인 줄 알고 음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간단하게 몇 가지 겸하고 있다며 내놓은 아이스커피 세 잔을 놓고 마주 앉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커피 이야기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처음엔 부인 미영 씨가 커피 사업에 반대를 많이 했다고 한다. 커피 종류도 많은 데다 같은 커피라도 물 온도·양에 따라 맛·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남편 상식 씨의 '맛있는 커피 연구'는 끝이 없었다. 커피 소품점을 열기까지 4년이었다. 수십만 원 하는 소품 구입부터 주방이 점점 연구소가 되어가는 모습, 혀가 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일시적 마비 증상에 속쓰림까지 호소하면서도 매일같이 커피 맛을 연구하는 남편 모습에 미영 씨 걱정도 앞섰다. 그저 남편의 취미로만 생각했기에 더욱 못마땅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상식 씨의 취미가 '드디어' 본업이 되었다. 그야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커피 소품을 판매하는데 그렇게 고된 커피 연구가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다. 상식 씨는 원두를 판매하는데 책에 나오는 내용은 기본이고, 나만의 차별화된 지식이 있어야 커피 트렌드를 이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검증된 맛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지만 직접 맛을 봐야 다른 사람에게 권유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상식 씨다.

가게를 열면서 미영 씨는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상식 씨가 부산·고성·양산·통영 등으로 배송할 일이 잦다 보니 가게와 7살 딸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미영 씨는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일상의 소소한 행복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벌이 할 때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와서 집에 있으니, 한동네에 누가 사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가게를 열면서 동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두더라고요. 특히 작은 마을이다보니 매일매일 지나며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저로선 신기한 변화지요."

가게에서 나오는 박스를 수거해가는 할아버지가 건네는 쑥갓 한 묶음에 미소가 번지고, 단골 손님이 가게가 잘 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직접 만들어 선물해 준 솟대에 감동 받는 날의 연속이라고.

상식 씨도 마찬가지다.

"커피를 전혀 즐기지 않는다는 한 30대 여성분이 우리집 커피를 한번 마시고는 매료됐다고 자주 들러요. 들르는 날엔 원두는 뭘 썼는지, 어떻게 뽑았는지, 추출일자는 언제인지 다이어리에 일일이 메모해가요. 정말 뿌듯하죠. 야구선수 한명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우리집 커피 한잔으로 그 사람이 남은 삶을 커피의 참 맛을 즐기며 살 것을 생각하면 영향력을 미친거잖아요. 아무렇게나 팔 수 없다 다짐도 하게 됐어요."

미영 씨는 자연스레 동네 엄마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제야 동네에 구성원으로 스며든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장사가 앞으로 잘 될까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두 달도 채 안된 기간에 오히려 큰 변화가 생기고 많이 배우고 있다고 합창하는 부부다. 미영 씨는 직장에 다닐 땐 아이가 실수하는 것을 엄하게 야단치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 놀아주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또한 큰 변화 중 하나이다. 긴장감 속에 살며 꽉 조인 나사를 조금씩 풀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인다. 커피로 사람을 만나고 커피 이야기로 친분을 쌓고 커피로 다양해지는 인생이, 내일이 기대된다는 부부다. 왠지 '커피 한 잔의 여유'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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