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못된 이무기의 한이 서린 억산(944m)은 밀양군 산내면과 경북 청도군 금천면 경계지역에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도망가면서 꼬리로 산봉우리를 내리쳐 갈라졌다는 억산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억산 아래 대비사에서 주지스님과 상좌가 수도에 정진하고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자다가 일어나 보니 상좌의 몸이 싸늘했다. 스님은 이불 덮고 따뜻한 방에서 자는데 몸이 차가우니 이상하게 여겼다. 이튿날 일어나 보니 마침 상좌가 어디엘 갔다가 들어오는지라 스님이 “어디 갔다 오느냐”고 묻자 상좌는 “변소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하고는 이불속으로 들어오는데 몸이 역시 차가웠다. 그래서 스님은 한번 지켜볼 생각을 하고 그 이튿날 자는 척하고 있으니 상좌가 가만히 일어나 스님이 자는지를 확인하려고 스님 코에 귀를 갖다 대는 것이었다.
스님은 일부러 코를 골며 자는 척하고 있었더니 상좌는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스님이 뒤를 밟기 시작했는데 상좌는 억산 아래 있는 대비못에 이르자 옷을 훌훌 벗고 물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못의 물이 좍 갈라지고 상좌가 이무기로 변해서 못 안을 왔다갔다하며 수영을 한 후 다시 옷을 입고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산 능선을 넘어 운문사 쪽으로 가파른 곳(속칭 이무기 못 안)에 이르자 상좌는 또다시 웃옷을 벗더니 커다란 빗자루로 돌을 쓸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상좌가 비질을 하자 크고 작은 돌이 가랑잎처럼 쓸려 내려가는 것이었다. 스님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놀라운 광경에 자신이 상좌를 몰래 따라왔다는 사실을 잊고 큰 소리로 “상좌야 거기서 무얼하느냐”고 묻고 말았다. 갑자기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놀란 상좌가 뒤돌아서 스님을 보더니 “1년만 있으면 1000년을 채워 용이 될 수 있는데 억울하다”는 탄식을 하고는 이무기로 변해 하늘로 도망가 버렸다. 이때 이무기가 밀양 쪽으로 도망가면서 꼬리로 억산 산봉우리를 내리쳐 두 갈래로 갈라졌다는 것이다.
억산에서 밀양쪽(운문사 앞산)으로 약 1km쯤 내려가면 마치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처럼 1백여m 정도 자연석이 질서정연하게 깔려있다. 어쩌면 용이 못된 이무기가 밀양시 산내면 시레호박소에서 머물면서 유명한 팔대명산인 가지산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지 모른다. 호박소 주변에는 높은 산과 기암괴석, 그리고 천혜의 자연림 등으로 일년 사시사철 산행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또한 억산말고도 밀양 산내면 가인에서 도보로 출발하여 청도 경계지점에 이르면 수백년묵은 돌배나무가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름드리 고목들이 비바람 풍우에 시달리고 시달려 앙상한 뼈대만 남아 길손들에게 인사한다. 전설따라 찾아가는 억산에서 새로운 우리의 정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