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약해지지 마>가 때 아닌 시집 읽기 열풍을 몰고 왔다. 시바타 도요라는 일본 할머니 작가가 100살 가까운 나이에 자신의 장례식에 쓰려고 모아둔 돈 100만 엔으로 출판했는데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1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마산도서관과 금강노인복지관에서 함께 진행한 힐링 도서관 '은빛 행복 책 읽기' 첫 수업은 이 시집으로 시작되었다. 첫 만남의 어색한 분위기는 시를 소리 높여 읽으며 어느새 누그러졌다. 낭송을 마무리한 뒤 지나온 삶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며 시를 쓰도록 했다. 평생 처음으로 시를 써본다며 난감해 하는 수강생들에게 100세 할머니도 하시는 일을 70~80대 젊은이들이 못 하겠느냐고 독려했더니 다들 추억과 시심에 빠져 멋진 시 한 편씩을 지으셨다.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을 모아놓고 연극 공연을 할 때 객석에서 지켜봐주던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 초등학교 시절 저녁 늦도록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바라본 하늘에 돋아났던 초승달의 추억, 어머니와 손잡고 걸었던 솔밭의 솔 내음, 어리고 약해 늘 못 미더웠던 아들이 어느 날 친구들의 딱지를 모조리 따서 서랍에 넣어둔 것을 보고 느꼈던 뿌듯함까지 추억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묵혀지던 기억들이 지금 일인 듯 새록새록 되살아나 한 편의 시로 완성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쓴 시의 가장 좋은 독자는 말할 것도 없이 시를 쓴 작가 자신과 기억 속 주인공들일 터였다.

이후 박완서, 법정 등의 책을 읽으며 서로의 느낌을 나누고 글로도 써보는 상반기 열 차례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독서도, 글쓰기도 힘들어 하던 수강생들이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노라고, 이제는 자서전 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빛나는 얼굴로 말할 때는 마음속에 감춰졌던 열정의 실오라기 하나를 풀어내는 작은 일을 내가 해낸 것 같아 무척 기뻤다.

학기 마지막 수업 도서는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윤영호 저)였다. 웰빙만큼 웰 다잉이 중요해지는 나이, 가치 있는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한 경건한 반성과 다짐이 이어졌다. 앞으로 남은 생에는, 맑은 정신이 있는 동안에는 1년에 한 번씩 유서를 고쳐 쓰면서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살아갈 날의 자세를 가다듬자는 한 어르신의 이야기가 진심으로 공감이 됐다.

디스크에 걸려 아픈 허리를 복대로 감추고, 제삿날 장보러 가는 일도 뒤로 미루고 빠짐없이 수업에 참석하는 수강생들을 보며 알고자 하는, 배우고자 하는 욕구는 노년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날로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사람들은 빠르게 늙어가는 한국 사회의 노령화를 걱정하지만 여전히 젊고 의욕에 넘치는 노년의 능력에는 주목하지 않는 것 같다. 다양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유도한다면 그분들은 지금까지 연륜과 사그라지지 않는 열정으로 분명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할 수 있으리라.

   

하반기에는 작은 작품집 한 권이라도 펴낼 수 있도록 더욱 독려해봐야겠다. 혹시 알겠는가? 그 책이 <약해지지 마>보다 더 큰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줄지.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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