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맛 읽기]MB정부 졸속 한식세계화, 올바른 방향은?

이명박 정부 핵심 사업 가운데 하나인 '한식세계화 사업'.

당시 대통령 부인이던 김윤옥 씨가 주도적으로 추진해 온 이 사업이 최근 감사원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2009년 100억 원으로 시작한 사업은 2010년 241억, 2011년 311억으로 매년 크게 늘어나 '영부인 예산'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지난해 예산도 219억 원을 받아 4년간 약 931억 원에 육박하는 예산이 집행됐다. 이런 매머드급 사업 예산이 부당 전용되었다는 사실이 이번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난 것이다.

감사원은 예산 931억 원 가운데 227억 원(23%)이 처음 내용과 다르게 변경돼 집행되거나 이월돼 사용됐다고 밝혔다.

전문조리사 양성을 위한 '한식 스타셰프 과정'에는 조리 경력과는 전혀 무관한 교육생들이 선발됐으며,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사업은 예산 50억 원을 받아 추진했으나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해 사업을 접었다. 특히 공모 과정에서 경비로 쓰인 4000만 원을 제외한 49억 6000만 원은 국회에 보고하지 않고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 등의 연구용역비와 콘텐츠 개발 사업비 등으로 부당하게 전용한 사실도 지적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문제가 예견된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12월 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식 세미나 유공자 오찬 장면. 정중앙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의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한식세계화가 한국 전통 음식 문화를 알린다는 순수한 목적보다 한식을 통한 '국가브랜드 제고'와 '수출 증대'라는 허울뿐인 명분과 경제적 목적에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지난달 23일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초청으로 열린 한 강연에서 "한식세계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치킨회사 사장, 커피전문점 사장, 식품 대기업 사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음식 문화 전문 학자에게는 함께 일을 하자는 제안은 물론 여타 조언도 받지 않은 채 장사치 수준으로 일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식세계화 사업에서 가장 많이 하는 것은 한국 음식을 외국인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초밥을, 이탈리아 사람들이 파스타를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국민에게 먹여가며 자기 나라 음식을 홍보하는 것을 봤느냐"고 반문하면서 "우리가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면서 '베트남은 역시 문명국이야', '이런 음식을 만든 베트남 민족은 훌륭해', '베트남 물건을 사야 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왜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이를 강요하고 있나"고 꼬집었다.

그는 "음식 문화는 주는 사람이 주도하는 문화가 아닌 그것을 먹는 사람이 주도하는 문화다"면서 "이명박 정부와 이번 정부가 벌이는 한식세계화 사업은 음식이 문화라고 생각하지만 음식이 문화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직 한국 음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 담론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한식세계화 사업을 진행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음식 문화 전문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자신의 저서 <음식인문학>에 "한식세계화 사업이 진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한국 음식'의 개념을 규정짓고 싶어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있지 않다"고 적었다.

이는 '한국 음식' 역사와 현재가 매우 다른 양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인데, 주영하 교수는 이에 대해 "20세기 이전의 조선 후기 사람들이 생산하고 소비한 음식을 한국 음식으로 규정하자면 지금과는 매우 달라 당황하게 된다"면서 "또 오늘날 한국인이 만들어 먹는 음식을 모두 한국 음식으로 규정하자니 오래되지 않은 음식 심지어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들도 너무 많아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 첨병으로 내세우는 음식인 떡볶이, 비빔밥, 한정식 등 역시 재료나 만드는 방법, 만들어진 역사적 연원 등 대부분이 사회사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터다. 역사적 시기와 연원을 아무리 따져봐도 근·현대 역사 범주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무리한 한식세계화보다 한식을 체계화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황교익은 "한식세계화를 하려면 먼저 우리가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면서 "한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에 대한 품종을 구별하고 나누어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농림수산성 주도로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에서 나는 모든 농산물의 생산지, 맛, 요리방법, 생산자, 유통방법 등을 정리해 놓은 자료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일본 쌀 품종인 '고시히카리'가 국내 미디어를 통해 잘 알려진 것도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목록화 작업이 한몫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바라는 경제적 의미를 한식세계화는 일본과 같이 섬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 농수산품이나 이를 가공한 제품들이 다른 나라에 많이 수출될 수 있도록 통로를 여는 일이 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황교익의 주장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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