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엘리트 지위 유지 위해 지은 도서관…한국 엘리트 공공성 투자 인색 비교

사진 속에 보이는 건물은 중국 광동성(廣東省) 개평시(開平市) 적감진(赤坎鎭)에 있는 '관족도서관'이다. 지난해(2012년) 2월에 광동성 광주시(廣州市) 일대의 역사유적을 답사하는 중에 보게 된 것이다.

이 도서관은 1929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931년에 낙성하였다. 건물의 외형은 말 그대로, 당시 유행하던 중서절충식이다. 특히 서양의 로마식 건축 양식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 낸 것으로, 중국인들은 이를 '교향(僑鄕)의 특색'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광동이나 복건의 연해 지역은 특히 19세기 이후에 들어 해외 화교를 많이 배출한 곳이고, 그 덕에 해외의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화 시킨 까닭이다.

이 도서관은 적감진에서 위세를 떨치던 두 종족 사이에 진행되었던 경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곧 관 씨와 사도(司徒) 씨는 이 지역의 명족이었던 바, 이들은 오랫동안 지역 사회에서 엘리트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청대 초기부터 지역 내에 공공 부분에 대한 투자를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 특히 청말부터 민국 초기에 걸쳐 해외에 나간 족인들이 현지에서 보고 들은 문물 중에서 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지역 사회의 부흥에 접목하려고 시도하였다.

관족도서관 부근./옥가실

사도 씨 측에서 족인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해외 족인들의 자금 등을 지원받으면서 먼저 공공도서관을 짓게 된 까닭이다. 사도 씨 도서관의 외양은 서구식으로서, 1923년에 시작되어 1925년에 완공하였다.

정중앙에 우뚝 솟은 종루는 1926년에 다시 첨가한 것으로, 시계는 미국의 보스턴에서 제작된 명품이라고 한다. 그 아래에 '사도씨도서관'이라는 관명이 걸려있다.

자극을 받은 관 씨네도 1925년에 관족도서관건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건축양식, 내부도서, 비용, 운영 등에 관한 논의를 하면서 건설에 들어갔다. 그 결과물이 '관족도서관'이다.

두 도서관은 당시의 건축기술을 총동원하고, 당시로서는 가장 규모 있고 짜임새 있는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정성을 들여 만든 장서실뿐만 아니라 종루, 바닥, 수평설계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며, 해외의 화교들이 양질의 자료들을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관족도서관. /옥가실

현재 두 도서관은 국가 소유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지역 사회의 중요 문화기구로 기능하고 있다. 두 도서관은 모두 1983년에 개평현의 중점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었다.

사실, 개평시나 적감진이나 두 곳 모두 광동성에서도 변방의 가난한 동네에 속한다. 적감진이 비록 소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 대내외 교역을 통해 경제적으로 약간 융성함을 누렸다고는 하지만, 광주와 같은 중심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1920년대는 북경 중앙 정부의 통치가 제대로 미치지 않아 비적들이 횡행하였고, 개평의 조루는 그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곧 조루는 외부에서 침략하는 비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지은 개인집이기 때문이다. 개평은 그만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낙후'된 곳이었다.

그럼에도 지역의 명망가들은 지역 내에서 혹은 해외에서 돈을 벌어 도서관 짓기 등, 지역의 공공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거금을 투자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당시의 기술과 기능을 최대한 고려하여 건설하였다.

이 건물을 보면서 나는 중국이 강한 국가로 발전할 수 있게 된 요소는 바로 이러한 지역 엘리트들의 공공 의식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국가의 발전은 정치 지도자들의 의식에 좌우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역 내 엘리트의 수준에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근대 중국의 지역 사회에 대해 연구해온 까닭이며, 잠정적으로 내리게 된 결론이기도 하다.

개평 조루./옥가실

눈을 우리 사회 내부로 돌려보면 어떨까. 지역사회에서 이른바 엘리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의 의식과 행동을 살펴보면, 한심하다 못해 말을 꺼내기 부끄러울 지경이다. 제발 좀 돈을 헛된 데서 자랑하지 말고, 공공성에 투자하는 것으로 빛을 낼 일이다. 우리도 지역사회 내에서 두루 존경받는 엘리트 집안을 하나쯤 갖고 싶다.

/옥가실(마산에서 띄우는 동아시아 역사통신·http://blog.naver.com/yufei21/60194026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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