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터뷰]딸 김은혜가 쓰는 아버지 김상태 이야기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불평하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 자식들이 돈 없다고 하면, 뭐라 하면서도 손에 돈을 쥐여주는 사람. 무뚝뚝하지만 집밖에 모르는 우리 집 큰 기둥인 아빠 김상태(59) 씨를 딸 김은혜(26)가 소개합니다.

-아빠 유년시절은 어땠어요? 엄마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경북 성주에서 3녀 2남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도우며 살았어. 농촌에만 살다가 도시에 와보니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 난 모든 게 우리 주변 환경이랑 비슷할 줄 알았었거든. 그러다 20대 때인 1983년에 우연히 친구 소개로 두산중공업(당시 한국중공업)에 입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일하고 있지. 30살 때 회사에 다니면서 네 고모 친구분 소개로 엄마를 만나게 돼 결혼한 거야."

-아빠 취미가 마라톤이잖아요. 마라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마라톤은 2006년부터 하기 시작했는데, 남자들 몸무게는 두 번 변한다고 하잖니. 한 번은 결혼하고 나서, 또 한 번은 나잇살을 먹으면서…. 아빠도 점차 몸무게가 많이 불어서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건강도 관리할 겸, 회사에 마라톤클럽이 있다고 하길래 가입하게 됐어."

-지금까지 마라톤 대회에 몇 번 참가한 거예요?

"2006년부터 모두 70~80개 대회에 참가했지. 처음엔 10km 마라톤을 하다가 점점 목표를 늘리면서 하프·풀코스·울트라 마라톤을 하게 됐어. 울트라는 2009년부터 해서 벌써 10번 정도 뛰었네."

늦은 밤에 힐링 중인 아빠, 엄마, 나.

-울트라는 종일 뛰는 거잖아요, 밤새 뛰면 안 힘들어요?

"보통 오후 5시부터 아침 9시까지 100km를 뛰는데, 이 악물며 뛰었어. 고통을 감내하며 뛴 그 시간을 생각하면 '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지. 인간의 도전은 무한한 것 같아."

-마라톤 때 무슨 생각 하면서 뛰어요?

"사실 매번 해도 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 백지상태 머릿속이라고 생각하면 돼. 온통 뛸 걱정이지, 다른 생각은 들어오지 않아. 숨이 차서 별 생각이 안 나는 거지. 처음에는 어떻게 완주해야 하나 걱정되지만, 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어. 출발할 때는 마음이 초조하고, 중간에는 포기할까 싶다가도 인내·끈기 있게 뛰는 데 목적을 두지. 기록은 생각 안 하고 건강을 위해 뛰고 있어. 나와 고독한 싸움을 하는 거지."

-아빠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마라톤 하면서 실제로 건강이 좋아진 것을 느껴요?

"배가 들어가고 몸이 가벼워졌지. 마라톤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아무 생각 없이 뛰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 신기한 게, 여러 대회를 나가봐도 모두 밝은 얼굴이야. 어두운 분들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물론 레이스 동안에는 힘들고 지친 모습도 많이 보이지만, 마라톤을 즐기다 보면 삶의 활력소를 얻어 건강해진 느낌이 드는 건 확실한 것 같아."

-제일 기억에 남는 마라톤 대회가 있다면요?

"제일 처음 뛴 '진주 남강 마라톤 풀코스'. 첫 도전이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 그리고 '포항 영일만 울트라 대회'도 기억에 남지. 새벽의 시원한 포항 앞바다와 영일만 풍경, 해돋이, 포항제철소 굴뚝 연기 등이 생각나. 그리고 '광주 빛고을 울트라 대회' 때는 새벽 2시에 반딧불이 반짝거리는 모습을 봤어. 아직은 그래도 청정지역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때 15시간 완주를 못할까 싶어서 온갖 힘을 내었는데 다행히 20분 전에 들어왔어."

-아참! 그리고 아빠 덕택에 가족여행 갔었잖아요?

"그러네! 작년 이맘때쯤이었구나. 서울에서 했던 '불교108 울트라 마라톤'에서 운 좋게 108번째로 들어와 상품으로 운동화도 받고, 울진덕구온천 이용권을 받아서 우리 가족이 1박 2일간 오랜만에 함께 했지. 생각해보니 그게 가장 기억이 남네. 다시 또 그런 행운이 있으려나? 허허허."

-마라톤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났겠네요?

"전국 각 지역 사람들 많이 봤지. 나이 어린 청소년부터 나이 많은 70~80세 할아버지까지…. 어린 애들 뛸 때는 뛸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함께 응원해주고 그러지. 나이 많으신 분들 보면 대단히 존경스럽고 '나도 과연 그때까지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 완주하고 사람들과 모여서 이야기도 하고 고향소식 듣고, 같이 막걸리도 한잔하고, 지방 향토음식도 맛보고…. 그럴 때가 재미있는 것 같아."

-마라톤이 아빠에게 주는 장·단점은 뭐인 것 같아요?

"장점은 건강에 좋고, 술자리도 자연스럽게 줄고, TV도 적게 볼 뿐만 아니라 과식하는 일도 거의 없어지는 것 같아. 그리고 완주하고 나면 짜릿한 기분, 처음엔 힘들지만 골인 지점에 오면 극복하고 이겨냈다는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단다. 남들 안 해본 100km를 뛰어봤다는 자부심이 있지(웃음). 단점은 너무 무리하게 뛰어서 관절에 안 좋을까 걱정이 돼."

-우리 가족 중에 같이 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가족 다 같이 뛰었으면 좋겠는데…. 안 뛰려고 하니 참…. 그 힘든 고통 때문에 안 뛰려 하니까 섭섭하기도 해. 그리고 김은혜! 마라톤 대회 나가서 세상 보는 시야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듣고 그랬으면 좋겠어. 매일 바쁘다고 운동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고 했잖아. 운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핑계다. 엄마도 '건강할 때 같이 뛰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한 적 있다고 하잖아. 요즘엔 엄마가 아프고 해서 아빠도 뛰는 게 많이 줄었지만, 대신 엄마와 함께 동네 한 바퀴 하는 걸로 달래고 있어."

-알겠습니다. 아빠 따라 꼭 뛰러 갈게요. 요새 오빠도 함께하잖아요. 어때요?

"끈기 있게 그 힘든 거리를 뛰는 거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인생은 종종 마라톤에 비유된다고 해. 특히 인내와 끈기로 결승점까지 달려야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 굳이 1등이 아니어도 조금 뒤처져 뒷줄에서 달리고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사람이 1등이 아닌가 싶어. 마라톤에서는 기록이 가장 빠른 사람만이 1등이 될 수 있지만, 인생에서는 노력·끈기를 두고 모든 일에 즐겁게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아빠가 1등 하려고 뛰나? 즐기려고 뛰는 거지."

-마라톤은 언제까지 뛸 거예요?

"힘 닿는 데까지 뛰어야지!"

건강을 위해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우리 아빠. 1등보다 즐기기 위해서, 그리고 끝까지 완주하기 위해서 뛴다는 우리 아빠. 그런 아빠를 보면서 나도 기나긴 삶의 여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달리련다. 달리다가 쓰러져도 좋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아빠, 우리 오래오래 뛰어요!'

/김은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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