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상호보완적 관계’로 탈바꿈

문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 혹은 정책입안자의 마인드는 어떨까. 돈이 되면 문화적 가치가 있고, 돈이 되지않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가. 문화산업과 경제논리, 콘텐츠사업, 문화정체성의 문제 등 오늘날 문화의 현주소를 짚고 방향을 알아보았다.

“경제 논리로 문화를 재단하지 마라!”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 문화계에서 가장 많이 주장한 구호 중 하나다. 이 구호에는 문화의 논리와 경제의 논리가 상호 대립적이고 배타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말하자면 문화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숭고하고 초월적인 그 무엇이고, 경제는 상행위와 관련된 저급하고 세속적인 그 무엇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그런 거센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문화는, 경제는 바뀌고 있다. 경제는 문화를 자기 발전의 논리로 채택하기 시작했고, 문화 또한 경제에 차츰 눈뜨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융합’은 비교적 최근(20세기 후반)에야 시작된 현상이고 본래는 이 글 처음에 소개된 구호처럼 경제는 문화와는 전혀 별개의 가치로 여겨졌다. 경제라는 개념이 시장과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였다. 그때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주류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성립됐고, 인간성보다는 효율성을 중심으로 그 논리를 전개해나갔다. 특히 18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발달한 ‘효율적’ 기계산업이 대량해고, 노동착취, 그리고 환경오염과 같은 사회문제를 양산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문제 덕분에 ‘경제’와 ‘문화’는 최초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영국의 미술평론가였던 존 러스킨(1819~1900)은 신혼여행지였던 독일의 처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는데, 후세들은 이를 두고 ‘문화경제학의 원류’로 평가하고 있다. 러스킨은 당시 금전적인 평가를 기준으로 인간이나 산업을 평가하는 방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는 이 같은 평가가 인간의 생명이나 자연미, 문화재를 파괴하고 결국은 인간의 품위와 살아가는 가치를 앗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러스킨은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과학과 예술을 상업이나 소비생활 속에 살려냄으로써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경제시스템’을 주장했다. 러스킨의 문화경제학은 이를테면 일종의 사회개혁 프로그램이었다.
오늘 쟁점으로 삼은 문화와 경제의 융합은, 사회개혁이 목표가 아니라는 점에서 러스킨이 생각했던 그것과 차이가 있다. 오늘날의 문화경제학 주제는 크게 ‘문화의 경제화’와 ‘경제의 문화화’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개념부터 간략하게나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문화’란 연구자 숫자만큼이나 정의가 많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다. 그러나 거칠게라도 구분짓자면 크게 두 가지 개념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문학.미술.음악 등과 같이 ‘사람들의 미의식에 감동을 주는 것’이고 둘째는 한국문화.회사문화.학교문화와 같이 ‘특정 집단의 행동양식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가 흔히 ‘예술’로 불리는 행위들로 러스킨이 염두에 두었던 것과 일치하고, 후자의 경우는 인류학의 발달과 더불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상대주의적인 개념을 가리킨다.
‘문화의 경제화’라 했을 때는 전자의 문화 개념(음악.미술.문학 등)에 해당된다. 각종 예술행위는 물론이고 취미와 교양과 같이 예전에는 시장과 무관하게 성립됐던 문화적 욕구들이 이제는 시장을 통해서 공급되고(예를 들면 문화센터를 통해서), 게다가 예술행위나 문화활동 자체가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경제화된 문화는 일종의 재화로 여겨져 경제의 논리로 재해석되는 것이다.
‘경제의 문화화’는 후자의 문화개념(집단의 총체적 행동양식)에 해당된다. 예전에는 기업이 기계적인 효율성만 염두에 두었으나 지금은 문화와 환경에 대한 사회적 기부, 지역사회복지에 대한 기여, 기업이미지 개선 등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기업과 경제의 발전은 기계적인 효율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이미지가 뒷받침 됐을 때 더욱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위기의 본질은 경제문제가 아닌 세계에 내세울 한국적 이미지의 상품이 없는 문화의 문제”라는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의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문화와 경제는 이제 서로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정점에 ‘문화산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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