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음향 엔지니어 조한결 씨

"남을 즐겁게 한다는 일…. 참 힘들죠. 그래도 행복해요. 제가 꿈꿔왔던 일이니까요."

그는 개그맨이 아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타인에게 기쁨을 주는 일은 드물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는 일도 없다. 심지어 남들에게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을 전한다. '소리'로 사람을 이끈다. 그는 '음향 엔지니어'다.

조한결(27·사진) 씨가 음향 엔지니어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음악에 빠져 살던 그는 무턱대고 대형 기획사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한창 연습생을 많이 뽑을 시기였어요. 운 좋게 들어갔죠.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춤, 노래, 작곡 등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거예요. 결국 한 달 만에 제 발로 나왔죠."

   

그렇다고 공부에 딱히 취미를 붙이진 않았다. 여전히 음악을 원했고 늘 접했다. 친척들이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점 역시 한결 씨에게는 큰 자극이 됐다. 그러다 기회가 찾아왔다.

"사촌형이 음향 엔지니어였어요. 정녕 음악을 하고 싶다면 엔지니어 길을 걸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죠. 쉽게 뿌리칠 수 없었어요. 음악 곁에 머물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사촌형 밑에서 수습 엔지니어 생활을 시작했죠."

시작은 만만치 않았다. 쉼 없이 음향 기기를 점검하고 몇 번이고 날랐다. 잔심부름, 뒷정리 등 각종 잡일도 한결 씨 몫이었다. 중학교 2학년 생이 견디기에는 너무 고된 생활이 지속했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장점도 발견했다. 일찍부터 음악을 들어온 덕에 듣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알았다. 속된 말로 '귀가 뜨인 것'이었다. 이윽고 사촌형과 다른 팀원들도 조금씩 더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년 넘게 잡일만 해오다 서서히 음향기기 다루는 법을 익혀갔죠. 원래 잡일은 기본이 2~3년인데 운도 따랐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어깨너머 보고 들어가며 점점 소리와 가까워졌죠. 이후 영국에 있는 '유니버설 뮤직'에 입사했고 견문을 넓혀가며 크고 작은 공연을 도맡았죠."

그 사이 한결 씨는 수습생활도 끝내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 현재는 유니버설 뮤직에서 퇴사해 다시 사촌형과 함께 일을 하는 한결 씨. 돌이켜보면 음악에만 빠져 살았던 10년이었다. 하지만 춤도 노래도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소년은 어느새 소리를 다루고 만드는 청년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어린 나이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경력이 쌓인 셈이다.

음향 엔지니어라고 다 같은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믹싱·마스터링을 하는 엔지니어도 있고, 공연장에서 음향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도 있다. 음향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설치하는 엔지니어로도 구분이 된다. 이 중 한결 씨는 공연장에서 주로 활동한다. 라이브로 음향 믹싱과 컨트롤을 맡으며 소리를 표현한다. 더불어 단순히 음향 효과를 조절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른 공연팀과 연계해 '공연 콘텐츠'를 생산하는데도 기여한다. '사운드 오퍼레이터' 역할을 맡은 것이다. 덕분에 유명 뮤지션들과 심심찮게 마주친다. 외국 공연도 자주 맡아 여름 성수기에는 외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꽤 화려해 보일지도 모르는 삶. 하지만 고충도 만만찮다.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음향 엔지니어를 꿈꾸는 사람이 간혹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밤새 무대를 설치하고 아침이면 다시 사운드 점검을 해요. 리허설과 본 공연을 마치고 나면 다른 공연을 위해 곧바로 무대를 해체해야 할 때도 있죠. 야외 공연이 있는 날엔 그냥 무대 옆에서 쪽잠을 자고요. 밤샘의 연속이죠. 공연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도 참 힘들어요. 남들처럼 마음 편히 즐기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순 없으니까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일. 그럼에도 꿋꿋이 버텨내는 이유는 뭘까.

"관중이 '이번 공연 소리가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거나, 뮤지션들이 '정말 편하게 공연했다'고 말해 줄 때 힘이 나죠. 관중과 뮤지션에게 '좋은 소리를 선물했다'는 자부심이 생겨요. 물론 더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도 다지게 되죠. 이래저래 매력이 넘치는 일이에요."

오는 7월 한결 씨는 '글래스톤베리' 록 페스티벌에 음향 팀으로 참가하고자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영국은 1년 넘게 머물며 일해 본 경험도 있고, 런던 올림픽 기간에 시내에서 다양한 공연을 수차례 맡은 적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고 설렌다 하는 그.

"이번에 가면 한 일주일은 밖에서 자야 할 듯싶어요. 좋은 공연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죠. 소리로 행복을 만드는 일, 정말 좋잖아요."

한결 씨가 전하는 소리는 앞으로 더 아름답게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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